한국일보

칼럼/ 추락하는 아버지 像

2005-06-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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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지난해 출시된 영화 중에 ‘가족’이란 드라마가 있다. 소매치기 전과자 딸과 전직 형사출신의 생선장수 아버지와의 사이에 오고가는 가족간의 갈등과 딸에 대한 아버지의 진한 사랑을 극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아버지는 딸이 모르는 상태에서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데 끈질긴 범죄의 유혹 속에 노출된 딸을 괴롭히는 조직에 의해 딸이 죽게 되자 아버지가 나타나 딸 대신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희생적인 딸 사랑을 보여준다.

수년 전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가운데 또 ‘아버지’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눈물겨운 가족 사랑의 실체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면서도 양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로 인해 항상 외로움을 느끼면서 힙 겹게 살아가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고달프고 고독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항상 직장생활만 쫓기며 하다보니 이 아버지는 자연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존경은커녕, 사랑도 못 받고 일만 하다가 암 선고를 받게 된다. 죽음 앞에 선 아버지와 그를 이해 못하던 가족은 마침내 병원에서 힘겨운 화해를 하게 된다. 이때 보여주는 아버지의 처절한 모습은 바로 한 가정의 기둥으로서 열심히 살다 죽어 가는 이 시대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다. 이 두 작품이 현대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오늘날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의 위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한 세기 전과 비교하면 가부장제도가 급격하게 변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현대화의 가장 공통적인 특징이다. 한 세기 전만 해도 가장이란 존재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재산의 소유나 상속, 심지어는 처나 자녀에 대한 생사여탈권까지 갖고 있을 정도였다. 다시 말해서 요즘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가장이 처나 자녀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던 어처구니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 정도로 그 시절 아버지의 권한은 거의 제왕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변해 자유민주, 평등의 물결 속에 국가의 국왕제도 폐지되고 가장의 권한도 점차 무너지면서 가정의 중심에서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합리주의와 진보주의 여파로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여성의 권한이나 어린이들의 권리는 타당성 있게, 그리고 평등하게 자리 매김을 하였다. 그 결과 아버지의 위치는 가족구성원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요즈음은 약자(?)들의 권한이 더 세져 여성과 어린이들을 보호하다 보니 오히려 아버지들이 점점 더 소외되는 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가장인 아버지에게는 식솔을 부양해야 될 책임만 있고 존경과 사랑의 대상은 되지 않는 현실적 부조리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민가정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어떤 가정에서는 미국사회 특성상 여성의 수입이 남성보다 더 많은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여성의 목소리가 자연 높아지고 매사에 결정권을 행사할 경우가 많다. 사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다시 한번 남성의 위축된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아버지들의 권위가 컸던 옛 시절을 비교해볼 필요는 없지만 가장이 이로 인해 삶의 긍지와 보람을 상실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성이, 즉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니면 남편이 기가 죽어서 산다면 그것이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교육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가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콤플렉스로 인한 반작용으로 폭력이나 다른 부작용으로 나타나 이혼하거나 가정이 금이 가는 현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대사회 구조가 어떻게 변하든, 가정의 수입구조가 어떻게 변하든 마땅히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권위를 인정받고 존경과 신뢰, 사랑을 받는 위치와 존재가 돼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보면 가장의 위상추락으로 가정이 붕괴되거나 이혼하는 가정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자녀교육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경제권을 가졌다 해서 남편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이에 편승, 아이들까지 아버지의 존재를 무시하는 그런 상황이 된다면 과연 잘된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정의 날을 맞아 과연 우리 집의 아버지 위치는 제대로 돼있는지 짚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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