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과 인격

2005-06-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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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인격
정홍권(동부제일교회 목사)

말과 물은 한 번 쏟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소위 망언(妄言)은 물론 한 번 말로 실수하여 봉변당한 이름 있는 이들이 많았고, 오늘날도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는 명사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자신으로서는 할 말을 했고, 객관적으로는 맞는 말이라 해도 결과적으로 특정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 물의를 빚는 일도 적지 않다.

어느 새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배가 드러난 것을 가리켜 “아버님, 배댁이 나왔어요”라고 했다. 시아버지가 “얘야, 너 그 말버릇이 무어냐?”고 했더니, “왜 그러시는데요? 저는 아무개 댁, 아무개 댁 하는 것이 높임말인 줄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버님 배라 하면 안좋을 것 같아서 배에다가 댁을 붙여 ‘배댁’이라고 높여드린 것인데요”라고 하더라고 한다.
높임말을 쓴다는 것이 오히려 우스운 꼴이 되는 경우들을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말버릇이 좋지 못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퍽 거부감을 갖도록 하는 일들도 적지 않다. 젊은 청년이 원로 목사님께 항상 ‘저’라는 대신 ‘나’라고만 하여 듣기가 민망했다. 어떤 기회에 “어른들에게는 ‘저’라고 하는 것이 예의도 되고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도 좋지 않겠는가” 하고 충고했다. 그는 “우리 부모님에게서도 그런 소리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말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그는 잘 한다” “그가 잘 한다” “그도 잘 한다” 이 말들에서의 차이는 ‘는, 가, 도’의 토씨들이지만, 이 말들의 뜻은 엄청 큰 차이를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아 해서 다르고 어 해서 다르다”라는 말이 있게 된다.이와 같이 자기가 한 말이 왜곡되어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사는 경우들도 수없이 많은 것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다.

시집 온지 얼마 안 된 어느 새댁이 시집에서 쫓겨났다. 자기 신랑이 인물로나 하는 짓이나 어떤 것도 시동생 보다 못하므로 신랑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어느 날 시부모 앞에서 신랑에 대한 불만을 말하다가 시동생 하고 산다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사단이 되었다. 신랑에 대한 불만으로 시동생 만큼만 해도 좋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으나 듣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고려 고종 때 재상이었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無曰親
而漏吾微 寵妻嬖妾兮同衾異意 無謂僕御兮輕其言外若無骨兮苞蓄有地 況吾不 近不驅使者乎’(무왈친닐이누오미 총처폐첩혜동금이의 무위복어혜경기언 외약무골혜포축유지 황오불설근불구사자호) 친근하다 해서 나의 비밀을 흘리지 마라. 귀여운 처첩도 한 이불 덮으나 생각은 다르니라. 부리는 종이라도 가벼이 말하지 말라. 겉으로는 복종해도 속은 딴 생각 품었느니라. 더구나 내 살붙이도 아니고 부리는 종도 아님에랴. - 동국이상국집, 권 19)라고 했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말이다. 말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중생 받은 성도의 증거로서 고상하고 품위 있는, 바르고 의롭고 선한 말을 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특별히 야고보서에서 말의 실수로 말미암은 해독을 강조한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사람이다”고 했다. 그리고 “혀는 ...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라고 했다.(약 3:1-12)

말은 인격의 척도이다. 느린 사람은 말도 느리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말도 급하다. 가벼운 사람은 말을 가볍게 한다. 무거운 사람은 입도 무겁다. 교양 있는 사람은 교양 있는 말을 한다. 막된 사람은 말도 함부로 한다. 속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은 말도 공허하다.“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주님께 찬송드릴 때와 똑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의 선하고 착한 마음을 담아 부드럽고 온유하고 겸손한 말로 속삭이듯 꼭 해야 할 말만 함으로써 어두운 세상을 밝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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