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좌우명이라는 것

2005-06-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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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한때 한국을 들끓게 한 이승은 인형전 ‘엄마 어렸을 적엔…’ 화보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표어를 벽에 써 붙이고 공부하는 소년의 모습이다. 동생들이 잠든 밤에 혼자 공부하고 있다. 방 한쪽에서는 어머니가 재봉틀을 돌리고 있고…. 그런데 요즘은 더 멋쟁이 말로 자기 자신을 격려하는 것 같다.

옐로 이펙트(Yellow Effect)같은 말이 그렇다. 이 말이 요즈음 자주 쓰인다고 하여서 알아보니 황씨 성을 가진 분들의 성공담의 토대가 된 ‘하면 된다’는 정신을 가리킨다고 한다. 즉 황우석 교수와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의 굳건한 정신이 사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좌우명을 가지고 있다. 늘 가까이 마음에 적어두고 일상의 경계로 삼는 말이나 글이 있다. 그것은 짧은 자기만의 말일 수도 있고, 때로는 속담이나 격언일 수 있다. 이런 말들은 선택된 자신의 채찍이다. 때로는 주위 사람들이 사용을 강요하는 채찍인 경우도 있다.

이 때 속담이나 격언이 쉽게 인용되고 있음은 그 뜻이 이미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등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적당한 장소와 시간에 떠올리기만 하면 자제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문화가 다르면 그 정신도 표현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바다에는 고기가 얼마든지 있다’ 등은 영어 속담에서 뽑은 것이다. 동서양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자라는 청소년들도 차츰 차츰 자기 나름의 좌우명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면서 단점을 보충하고 장점을 키우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자립심이 약하다면 ‘내 일은 내가 처리한다’는 말을 간직하면 좋겠다.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생각하자’고 하면 좋지 않겠는가.이 좌우명이 자신의 심신의 성장에 따라서 같이 깊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일찍 일어나자’→‘하루 시간표를 정하자’→‘어려운 일이 생기면 부닥쳐 보자’→‘부지런하자’
→일할 때와 쉴 때를 구별하자’→‘사회에 공헌하자’→‘삶을 즐기자’는 하나의 예이다. 틀에 꽉 묶인 생활을 바라지 않을 때도 좌우명이 있을 수 있다. ‘자유를 만끽하자’ ‘나 자신을 유감없이 발휘하자’ ‘고정 관념을 배격하자’ ‘자아를 찾자’ 등 얼마든지 그 방면의 삶의 지침을 정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람이란 강하고도 약한 면이 있어서 자기 자신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어떤 말이나 글을 간직하면서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잡는 것이다. 인터뷰 할 때 많은 경우 좌우명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상을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까닭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수효 만큼 각자가 원하는 인생길의 수효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느냐, 어느 길이 더 좋은 길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각 민족 문화에 대해 우열을 말할 수 없고 거기에는 오직 차이가 있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각자가 가고 있고, 각자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우리 삶에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거리에는 교통신호등이 있고, 침실에는 알람클락이 있고, 각자의 마음에는 가끔 경종을 울리는 좌우명이 있더라도 아주 제어하기 힘든 ‘나’가 존재한다. ‘나’를 충분히 살리면서 ‘나’를 알맞게 조절하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다. 만약 자신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다면 성인이 되겠지만 어느 정도 제어하면서 효과적인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좌우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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