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헌혈=이웃사랑

2005-06-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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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호(취재1부 기자)

1990년 중반 한인 청소년 사이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앨범 중 ‘교실 이데아’라는 곡을 거꾸로 듣는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술을 노린 것 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모르지만 교실 이데아를 거꾸로 들으면 부분적으로 “피가 모자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재미로 듣고 넘겼던 “피가 모자라”가 요즘 뉴욕시가 겪고 있는 혈액 부족현상과 맞물려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랐다.

올해 초 뉴욕주를 강타한 강추위와 폭설 등으로 인한 독감 및 감기 발병으로 인해 뉴욕시에는 헌혈인구가 크게 감소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뉴욕혈액센터는 잦은 헌혈행사 개최와 미디어를 통한 헌혈 캠페인 참가호소, 헌혈 허용 연령 낮추기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뉴욕주는 서서히 혈액 부족 현상을 극복해가고 있지만 헌혈을 하는 주민 가운데 한인들의 참여는 지극히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 밀집지역에 위치한 플러싱 병원 메디칼 센터 경우 지난 3월 열린 헌혈행사에 한인은 불과 3명이, 지난 9일 행사에는 단 1명만이 참가했다. 이는 올해 플러싱 병원 헌혈행사에 참가한 70여명의 주민 가운데 0.057%에 달하는 수치다. 플러싱 병원 관계자는 헌혈행사가 주말이 아닌 주중에 열려 참석을 못하는 한인들도 있겠지만 ‘내 문제가 아니다‘라는 한인들의 생각이 더
욱 큰 이유인 것같다고 밝혔다.
이같은 생각은 병원을 방문, 헌혈을 권유받은 한인들이 가장 많이 대는 핑계가 ”내 피도 모자라는데 누구한테 주겠느냐“와 ”시간이 없다“ 등인 것으로 미루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지난 9일 헌혈행사에 근무 중 잠시 짬을 내 참가한 한 한인은 ”미국 시민으로서 받고 있는 혜택을 조금이나마 되돌려주고 싶었고 만약 내 아이가 병원에 입원, 피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에 헌혈을 하게 됐다“고 말해 한인들의 무관심에 실망하고 있던 한인
봉사자들을 기쁘게 했다.

한 사람에게서 뽑아지는 혈액은 1파인트에 달한다. 며칠이면 재생되는 이 소량의 혈액으로 피가 절실히 필요한 3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한인들의 생활 패턴을 잘 알고 있지만 ‘만약 내 가족이 피가 필요하다면‘이란 생각을 갖고 10~15분이면 끝나는 헌혈에 참여한다면 현재 혈액이 필요한 한 가정의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서태지의 ‘피가 모자라‘
또한 추억의 일부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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