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장의 편지/땅은 어머니

2005-06-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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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옥(MOMA 근무)

“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땅이라구요? 우리가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의 주인이 아닌데 이것을 사겠다고 하십니까?”

그렇게 당당하고 용감하게 미 서북부의 인디안들을 총 지휘하던 씰트(Sealth) 추장이 뼈저리도록 가슴을 치는 글귀로 워싱턴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첫 구절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 편지를 읽으며 얼마나 콧등이 시큰거렸던지…“땅은 우리 어머니라는 것… 땅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땅에 속해 있다는 것…”

나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온갖 자료와 사진들을 몇날 몇 밤 모두 훑어보면서 이 추장의 얼을 달래보려 했다. 그의 이름을 딴 시애틀 근처에서 처음 유학시절을 보냈었기에 난 아직도 그 고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고 가장 친했던 미국 친구는 여전히 그곳에 살며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다.이 편지를 접한 뒤 그 친구와 나는 씰트 추장에 대해 전화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 친구가 알려준 이야기 중 또 하나 가슴 아팠던 것은 Princess로 귀여움을 받았던 그의 딸이 아버지가 사망한 뒤로 시애틀 거리 한 구석에서 기념품 몇 가지를 팔며 전전하다가 외롭게 죽어갔다는
것이었다.

씰트 추장의 편지가 요새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는 우리들의 양심에도 찡~ 하게 전달될 것 같아 나는 내 나름대로 정성껏 번역을 해 보았다. 전체를 고대로 직역하는 대신 내가 좋은 몇 구절만 골라 간단히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디안 추장이 보낸 편지>라는 제목으로 쓴 내 글이 2003년 10월 18일 한국일보에 나
왔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5월 24일자 신문을 먼저 읽고 난 남편이 나보고 “땅은 우리 어머니”라는 글을 빨리 읽어보라며 당신이 반드시 무슨 반응을 보일꺼라 덧붙였다. 제목이 좋아 읽으려던 참이었다.

읽으면서 나는 웃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웃다가 내가 전에 쓴 기사를 들고 나왔다. 어쩜-! 나의 글이 이 글을 쓰신 분의 문장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남편의 말이 걸작이었다. 세익스피어의 문구를 내 것이라고 하면 어때? 물론 과장으로 한 말이지만 고대로 인용할 때는 누구 누구의 어느 부분에서 따온 것이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임
은 두말 할 것도 없다.뭐- 나는 영광인데 하며 또 한번 웃어 제꼈지만 그래도 글 쓰신 분이 내 글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한 말씀만 쓰셨더라면 이렇게 뒤끝이 씁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마음이 좁아서, 더욱이 내가 너무 잘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예의이며, 또한 도덕상 어긋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 온 것을 당신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시겠습니까?”조그만 자갈을 입에 잔뜩 집어넣고 바람과 풍파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큰 음성으로 다듬어 놓은
이 노추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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