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핵문제의 다차방정식 풀기

2005-05-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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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공방이 고조되면서 또다시 북핵이 한반도에 위기의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으며 영변의 5MWe 원자로에서 800여개의 폐연료봉을 모두 꺼냈다고 발표했다. 그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그들의 말대로 핵무기고가 강화될 지 모른다.

위험한 ‘핵게임’을 벌이고 있는 북한의 논리는 간단하다. 미국이 북한을 ‘압살’하기 위해 적대정책을 추진하니 북한은 ‘자위’를 위해 핵을 개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적대정책을 버리고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제재 해제, 에너지 지원 등의 조치를 취하면 핵문제의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고 핵무기 개발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면 북핵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먼저 몇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첫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의 장래를 위협한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북한 스
스로에게 더 많은 위협을 초래한다. 셋째, 따라서 북한은 조건만 맞으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 폐기할 것이다. 넷째, 한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납하지 않는다. 다섯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동북아에서 핵 도미노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가정들을 전제로 북핵문제의 다차 방정식을 풀어보자. 먼저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대북 비난을 6자회담 불참의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적대관은 냉전체제 아래서 주어진 상수였다. 미국 때문에 ‘남조선 해방’에 실패한 북한은 미국을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로 부르며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한 미국에 북한은 때때로 접근을 시도했다.
특히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면서 북한은 그 ‘적대국’ 미국을 통해 체제 유지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9.11 테러사태가 부시행정부의 국가 안보관과 정책노선에 경직성을 초래했으나 냉전시대 미국의 북한관이 지금보다 더 좋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미국이 할 일이다. 미국은 21세기의 초강대국이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듯이 초강대국이 자기중심적 정책을 펼칠 때 많은 적을 만들어내고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9.11 사태가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할지라도 미국은 탈냉전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로서 세계의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체제는 물론 무수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독립 이래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외교정책의 규범적 가치로 삼고 있는 미국
도 현실에서는 독재국가와 타협하고 전체주의 국가와 협상한 사례가 많다. 북한과 말싸움을 하는 것은 세계 질서의 유지에 책임이 있다고 스스로 강조하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국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한국이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은 전쟁의 방지이며, 그 기반은 강건한 안보 태세의 유지다. 북핵문제와 관련, 한국의 최대 수단은 주변국과의 협력이며 꾸준한 설득과 경제적 능력이 부차적 수단이다. 그러나 우정있는 설득은 때로는 얼굴을 붉히는 단호함
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역할이다. 제 2차 북핵문
제 대두 이후 중국은 때로는 북한을 옹호하고 때로는 북한을 설득하면서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 재개를 지연시키고 핵무기 보유를 선언함으로써 중국의
역할은 그 실효성에 의문이 생겼다. 또한 중국이 북핵문제를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활용
한다는 의구심도 등장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강국이 되려면 북한의 최대 후원국으로서 북핵문제 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중국은 북한에 대해 강화된 설득과 함께 때로는 압
박을 행사하는 악역도 맡아야 한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북한의 적대 대상이다. 그러나 북일 수교 교섭에서 보듯이 북한은 일본과
협상할 수 있다. 북한은 일본에 대한 비난을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자본과 기
술 이전을 기대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특히 민감한 일본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역할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에게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자국의 극동지역 경제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 또한 러시아와의
관계 발전을 중시한다. 러시아가 북한의 극단적 행동을 자제시키고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할 수
있는 여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컨대 북핵문제를 푸는 다차 방정식 해법의 요체는 6자회담 참가국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
록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참가국들이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조금씩 양보하여 타협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북핵문제는 해결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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