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골프와 동포사회

2005-05-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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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희(전 뉴저지 세탁협회장)

어느날 교통사고로 젊은 사람 하나가 죽었다. 그 젊은이가 염라대왕 앞에 불려갔다. “너는 젊은 녀석이 아직 이곳에 올 때가 안된 것 같은데 내가 너를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일주에 다섯번씩 골프나 치면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하니 대왕이 화를 벌컥 내며 “이놈아, 그런데가 있으면 내가 당장 가겠다”.

예전에는 동포들이 ‘아이들 때문에 이민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골프 치러 이민왔다’는 동포가 늘어만 간다. 마치 미국에 골프 원수 갚으러 온 것 같이 골프 열풍이 날이 갈수록 더해가니 우려가 앞선다.남자들 몇 명이 모여앉으면 당연히 시작이 정치 얘기다. 얘기가 시들해지면 자연히 골프 얘기로 넘어간다. 한참 골프 얘기가 고조되면 한 구석에서 자고 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 한 마디 거든다. 이런 때 좌중에 골프 안치는 사람이 있으면 완전히 왕따다. 요즘같은 시대에 이런 분들이 오히려 존경스럽다. 얼마나 바빴으면 그 많은 유혹에서 초연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동포사회에 골프 열기가 너무 지나쳐서 일상 가정생활에도 사업체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골프는 가끔씩 적당히 하면 생활에 활력이 된다. 고달픈 직장에서 탈출, 건강증
진, 재충전, 정신휴식 등에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한인들 중에는 모든 것이 지나침으로 해서 여러 부분에 피해를 주는 일이 적지 않다.
Golf는 Grass 위에서 Oxygen 맑은 공기를 마시며 Light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Foot 발로 걷는다는 의미를 가진 혼자서도 혹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골프에 기본정신은 매너와 정직이다. 그래서 흔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과 라운딩하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좋은 매너를 보이면 상대가 감동하고 우호적이고 금방 친분이 생겨 사교에 더없이 좋은 운동이다.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 많은 골프장을 가봐도 골프장에 나온 아시안은 거의 90%가 한인들이다. 난 아직도 중국인이나 일본사람을 만난 기억이 별로 없다. 인구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한국을 능가하는 그들이 왜 골프장에 안 나오는건지, 못 나오는건지 아직 그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동포들이 하는 사업은 대개 노동집약적인 사업이다. 세탁소, 네일업, 청과업, 모두 몸으로 떼우는 사업이다. 그런데 그 몸이 사업체에 있지 않고 골프장에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보통 주인 하나가 종업원 두 세목을 하지 않는가? 교통에도 흐름이 있는 것 같이 골프도 전체 흐름이 있다. 한쪽에서 정체하면 골프장 전체가 마비된다. 그런데 극히 일부 한인들이 내기 골프하다가 너무 시간을 끌어 정체를 시켜 뒤에 기다리던 골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친다. 급기야 랭지가 나타나 엄중한 경고를 받는다.

그 뿐인가. 내기골프 치다가 열이 나면 큰 소리로 싸운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멀리 건너편 홀에까지 들린다. 골프의 생명은 스코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매너인데 매너 없이 굴어 미국인들한테 인상 찌푸리게 해서야 되겠는가.다민족이 어울려 사는 미국에서 한인이 한 행동이 곧 한국이라는 국가 이미지에 연결된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미국이 골프천국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골프른 미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레저이다. 경제적인 면이나 시간을 사용하는 면에서도 초기 이민자들이 만만하게 덤빌 만큼 문턱이 낮아보이지 않는 것이 골프다. 때문에 히스패닉계나 다른 아시안은 골프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전에는 주말만 되면 남편들이 골프백을 메고 나가 주말 과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인까지 골프장으로 향해 집에 아이들만 남아 주말 고아라는 신종어가 생겨났다. 일부 한인들이 골프는 생활의 전부요, 희생을 전부 걸고 몰두할 만큼 가치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한인은 근면, 성실 하나를 밑천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이 점점 퇴색되는 느낌이기에 기분이 매우 씁쓸하다. 우리들의 주종사업을 타민족들이 바짝 추격해 오고 있는데 그들과 어떻게 경쟁하며 또 경쟁에서 과연 이길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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