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馬)이 된 자전거

2005-05-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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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이 없을 때는 그것들을 시장에서 구한다. 거기에도 바라는 물품들이 없을 때는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발명품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미국 생활에서도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긴가.

무엇이든지 다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있으면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물품만 모은 선전책자를 보면 별 것이 다 있어 놀라게 한다. 편리한 것을 찾는 극치이지만 그 존재를 몰라서 찾아 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정말 그런가.


이번에 어린이 연극을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학생들에게 한국 전래 동화를 재미있게 소개하려던 주된 목적 이외의 수확이 컸다. 연습 기간을 통하여 학생들과 더 가까워졌다. 서로 더 이해하게 되었다. 모래알이던 학부모들이 서로 힘을 모았다. 그래서 즐거운 나날이 계속되었다.이 중에서도 특기할 것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낸 일이다. 새로운 생각이란 옛 것을 해석할 때 그것이 결코 먼 것이 아니라 내 자신 속에 녹아있다고 가깝게 느껴진 것이다. 새로운 물건들이란 연극에 쓰인 소도구의 제작에 나타났다.

우선 필요한 물건을 생각하였다. ‘활’이 필요하다. 이 활이 정말 화살을 매워서 실지로 쏘는 흉내를 낼 수 있는 활이어야 한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이게 과제가 된다. 또 걸어다니는 ‘수탉’을 만들려면 어떻게 고안해야 하는가 등이다. 그 중에서도 어렵던 것은 말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 말이 연극에서 꼭 필요한 물건이다. 그런데 이 말은 실제로 사람이 탈 수 있고 거기서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또 이 말은 무대 위를 한 바퀴 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러 번 토의를 거듭하였다. 무엇이 움직일 수 있나. 그렇다면 샤핑카트는 어떨까. 그것의 단점은 타고 내릴 때 불편한 점이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옳다! ‘자전거’는 어떨까? 자전거가 말이 된다면 어떻게 꾸미면 좋겠는가. 이것이 ‘말이 된 자전거’가 탄생하는 생각의 과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전거의 말은 걸작이다. 결국 어떤 도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새로운 물건을 창조하였다.

무대장치는 필요한 것을 단순화하여 상징하는 방향으로 계획하였다. 예를 들면 ‘호수’를 알록달록한 긴 천으로 동그라미를 만드는 것으로 상징하였다. 실제의 모형을 만드는 것보다 이처럼 상징하는 편이 관객의 상상력을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림의 여백이 아름답고 글의 여운이 감동을 자아내는 이치와 비슷하다.

이런 것들이 연극의 주가 되지는 않지만 연극의 진행에 영향을 준다. 보통 연극이라면 대화로 이어진다. 이번 연극을 위한 극본은 점점 간단해졌다. 두껍던 극본이 점점 얇아졌다. 그 이유는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 때문이었다.

또한 힘들었던 것은 자연스럽게 제스처를 하는 일이었다. 겨우 한국말 대사는 암기하되 그 말에 감정이 따르지 않는 이유는 참뜻의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간단한 말이라도 반복 연습하는 동안에 자기 자신의 말이 될 수 있게 하는 데 연극처럼 좋은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인생이 연극인지, 연극이 인생인지 몰라도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연극과의 관계를 맺어온 것을 보면 그 매력을 알 수 있다. 전업 배우가 되고 안 되는 것에 관계없이 어린 시절 연극활동에 참가하는 것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럿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특히 이 지역의 경우는 한국말 연극에 참가하게 되면 재미있게 한국말을 배우게 된다.

대사가 거의 없는 학생들의 환한 표정을 보면서 대사의 유무 보다도 참가의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극이 이렇듯 열의·기쁨·창조정신이 한데 뭉친 결과라 하더라도 미숙함이 눈에 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앞둔 설레임은 여기까지 온 과정에서 느낀 기쁨 때문이다. 연극은 출연자나 관람자를 즐겁게 하고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가정의 달에 어린이들에게 주는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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