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술과 친구

2005-05-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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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관)

얼마 전, 한 여성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그의 친구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날은 술도 같이 나누는 편안한 분위기였는데 그 친구여성은 술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는 정도의 과묵하고 사귀기 조심스런 사람으로 보였다.

그 뒤로 그 사람으로부터 ‘다시 만났으면 한다’는 전갈이 왔는데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사교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나의 뜻을 전했다. 사실이다. 나는 그 사람과 특별히 만나서 대화를 나눌만한 화제도 없었고 또 더구나 상대가 여성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술을 같이 나누는 상대가 아니면 마음을 열 수 없는 나의 소심증 때문이었다.


이렇든 나는 애주(愛酒)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라 자처하고 있지만 반면에 술에서 유래하는 부정적인 측면 또한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부정적 측면 때문에 술과 단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리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은 나의 편향적인 선택이다.
나는 술과 친구의 인연을 아주 높이 꼽는 축에 속한다. 술은 사실 위대한 음식이다. 역사적으로 술을 사랑하고 술을 찬양한 위대한 위인이나 문학 작품들이 즐비한 이유가 있다. 그 중에 우리 동양인이 가장 가까이 알고 있는 위인이라면 당(唐)나라 때의 위대한 시인 이백(李白)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술을 찬양하는 수많은 시를 남겼다.

그는 멋지게 술을 즐길 줄 알았다. 그의 시에는 더러 주정뱅이같이 보이는 표현들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의 기법으로 쓴 과장일 뿐이며 이백은 이런 표현을 할 만큼 멋쟁이였던 것이 틀림없다.이처럼 술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고 이제는 여성들도 식당에 앉아 반주를 놓고 식사를 하는 장면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특히 우리 한국인은 세계 스캇치 위스키 시장의 선두를 늘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술을 즐기는 민족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이 이처럼 술을 즐기는 민족인데 반비례해서 그 술을 즐기는 문 불행하게도 세계적으로 수치스러운 꼴찌에 속하니 통탄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술을 마신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책임을 질 수 없다면 마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퀸즈의 한국인들의 형사사건 통계를 조사해 오고 있다. 근년에 와서는 음주운전 사건이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면서 그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음주운전은 그 법적 제재 또한 전에 없이 강화되어서 이제는 음주운전이 심각한 형사 범죄 사건이 되어 있다.

형사 범죄라는 뜻은 우리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전과자로 기록된다는 뜻이다. 음주운전 사건의 재범 또는 연속범은 중범으로 형을 받게 되고 추방 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오히려 그 사건이 늘고 있으니 이것은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한인사회의 보편적 인식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애초에 술을 잘못 배운 것이 그 시작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한인들은 술을 어떻게 마시는 것이 정도(正道)인지를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술을 마시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취하기 위해 퍼 마시는 식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폭탄주를 생각해낸 민족이니까 술 마시는 목적부터 잘못 알고 시작한 것이 틀림 없다.
술을 즐기기 위해 마시기 보다 미치기 위해 마시는 사람이 많고, 마신 다음의 일은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는, 수치를 모르는 후진성 사고방식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술은 친구와의 친교를 위해서 마음을 열어주게 하는 아주 값진 음식이다. 그 때문에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자리를 같이하는 것을 거북해 하고 멋지게 마시는 사람은 아주 편애하는 편이다. 멋지게 술을 마시는 친구와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멋지게 술을 마신다
는 것은 책임질 줄 알며 마시는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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