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 오세대의 변(辨)

2005-05-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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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오세대의 변(辨)
김윤태(시인)

나이 육십이 넘은 사람들, 이들은 농경시대에 태어나서 어리둥절한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자랐고, 생전에 보지도 못한 정보화시대에 어처구니 없이 어리둥절하게 밀리더니 이제는 막강한 최첨단이란 이름 앞에서 사라져가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상황만 해도 몇 고비를 구비구비 나누어 넘고 또 넘어온 사람들이다. 왜정시대에 태어나서 해방을 맞아 유년기를 보냈고, 육이오 전쟁을 거치면서 소매자락에 누렇게 마른 콧물이 더덕지가 되도록 황량한 길거리에서 정서랄 것 없는 열살 전의 키를 키우면서 자랐다.먹을 것도 별로 없었다. 그 해의 여름은 왜 그렇게 더웠으며 그 해의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는지!


삼일오 부정선거로 인하여 잿더미로 무너지는 자유당을 보았고, 군사혁명에 의하여 낮잠 같았던 민주당이 또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우리들 마음 속에 장천의 푸르른 희망 대신 무엇을 담았을까.

장장 십팔년의 으시으시한 군사정권을 등에 지고 살아가더니, 느닷없는 총성 서너방에 박정희의 제삼공화국이 무너지고, 그런 호기를 잘 이용한 전두환의 용병술에 또다른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갈수록 더 했다.
말 안 듣는 자 삼청대로 보내고, 꼬는 자 군대로 징발을 했으니 그 당시의 젊은 청년이었던 지금의 육십대는 오금을 펴보지도 못하고 지냈다.
노태우 때부터는 웬걸로 민주주의를 한답시고 자유 자유하더니 알고보니 그것은 뇌물을 갖다 바치는 자유였다. 뇌물의 맛이 얼마나 단지 우리같은 사람은 젓가락짝 끝에 쬐끔이라도 찍어서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으니 그 맛을 알 리야 있겠느냐마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라야 그 맛을
안다고 뇌물도 먹어 본 사람이라야 그 맛을 알겠지.

알짜배기 재벌이 되려면 대통령을 하면 되고, 알짜배기 부자가 되려면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면 된다는 숯껌댕이 같은 희망을 안겨준 공로자들이 선거 때만 되면 이전투구로 싸운다. 뒷길도 길이고 흙탕길도 길이다. 밤길은 그들에게 있어서 더욱 좋은 길이 아니었던가!

운 좋은 자 장관 되고, 돈 많이 뿌린 자 국회의원 되니, 그간에 뒷길에서 받아먹은 뇌물 때문에 검찰청 문 여는 소리가 자고나면 더 요란해 진다.
국민의 여론을 진압시켜 보려고 빙산의 일각을 건드려 본 것 뿐인데도 검찰청 문앞에 마른 헛기침의 고관들이 줄을 이었다. 청렴하다고 국민의 신망을 받던 전 국회의장 박준규가 그랬고, 경제정책을 잘 이끌어간다는 이
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또 어떤가. 국가 경제가 아니라 저희 집 가정경제를 위해서 부정이란 부정은 앞장서서 한 사람들. 국민 앞에서 “미안합니다” 하고 물러서면 다 되는 사회, 나라를 믿고 살아온 선량한 많은 국민들은 명예스러운 국민권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이 아닌 어디론가 다 떠나고 싶을 것이다.

주면 먹고 안 주면 달래서 먹고, 그래도 안 주면 트집잡아 달래서 먹고, 그래도 안되면 때려서 빼앗아 먹고 그래도 안되면 아양을 떨어서라도 얻어 먹는다.그래도 해외에서 사는 동포들은 조국을 미워하지 않는다. 한국의 현실이 그렇다고 해외에서 사는 동포들은 조국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연민할 뿐이다.

조국이 나에게 많은 추억을 심어주었고, 그 많은 추억을 아이들에게 전해주며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가 맑고 깨끗하고 행복만이 넘치는 나라라고 믿고 있다.
불행한 변천을 안고 살아온 육십대의 제오세대가 아이들에게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신성한 향수의 그림 한 폭, 아이들의 꿈이 무너질까 두려워 아이들과의 조국행이 그래서 망설여지고 있다. 조국의 이름이 불리워질 때, 조국에서 오는 슬픔도 있었으나 기쁨과 즐거움도 있었다. 그래
서 우리는 조국을 미워하지 않는다. 더욱이 아이들 앞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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