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불체자도 사람인데

2005-05-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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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경(취재1부 기자)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한다는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미국에 이민와 열심히 일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미 행정부의 ‘국토안보 최우선 주의’ 때문에 미 시민권자 이외에는 미국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9.11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반이민정책으로 불법체류자는 물론 시민권자를 제외한 합법체류자들도 미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지켜야하는 조항이 하나 둘씩 늘어, 일부 한인들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우선 ‘리얼 아이디 법안’은 국토안보를 위해 전국이 표준화된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발효되면 불법체류자들이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 것을 원천봉쇄하게 된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조건부 영주권자, 합법 체류자들만 체류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해당 서류를 제출해 운전면허증을 받고, 이 면허증이 여행할 때나 정부 혜택을 받을 때 공식 신분증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1,000만명의 불법체류자들은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지 못해 발이 묶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어떻게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겠지만 많은 지역에서 불편함이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또 부시 행정부는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응급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체류신분을 확인, 서류를 보관해야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생명을 다투는 긴급한 상황에서 체류신분을 밝혀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아파도 병원을 두려워하게 되는 불체자들도 생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불체자 자녀들이 대학을 진학할 때 합법적 체류자들과 동일한 학비를 적용하자는 드림법안은 매해 상정될 때마다 회기를 넘겨 통과하지 못해 일부 학생들의 고등교육의 꿈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 교육이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교통수단, 몸이 아파 병원을 찾는 것은 체류신분을 떠나 인간으로서 갖는 기본 권리라고 생각한다. 불법체류자들에게서 이런 모든 기본 권리를 뺏어가는 것은 이들의 희망을 앗아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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