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노후생활을 위하여

2005-05-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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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규(아리스토 아카데미 원장)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것이다.
여러가지 통계 수치를 보면 불과 10여년 내에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지금 보다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기야 통계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낮은 출산율에 평균수명이 이렇게 계속 연장된다면 앞으로의 사회를 예견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 같다.문제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고령 인구가 활기차고 보람있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노후를 위하여 보험을 들고 또는 경제적인 준비를 해 두면 노후에 걱정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 발달에 대한 연구를 한 많은 학자들의 보고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노후생활의 행복을 꼭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목격한 일이다. 그곳에서 기이한 현상을
하나 보았다. 매주 월요일이면 각 은행 앞에 두 세 블럭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행렬이었다.

그것은 50~55세가 되면 벌써 정년 퇴직을 하고 연금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시내 곳곳에 있는 공립병원들이 모두 무료인 그곳은 사회보장제도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공립병원은 모두 무료이고 연금으로 생활이 보장되는 그들이 일찍 정년 퇴직하여 주로 소일하는 곳은 공원이었다.

시내에는 큰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원들이 많이 있었는데 공원의 곳곳에 놓여있는 벤치에는 언제든지 그런 젊은 노인들이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일 없이 앉아있는 그들은 절대, 절대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시인의 한 사람은 그가 쓴 수필에서 나이 70세에 미국에 있는 손자들을 보러 가기 위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며 손자 손녀들과 영어로 이야기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떨리고 영어 공부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렇다. 이렇게 노후에도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또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삶을 보람 있고 활기차게 해주는 것 같다.하버드대학의 성인발달연구소가 각 계층별로 나누어 820명을 대상으로 무려 8년여에 걸쳐 어떻게 사는 것이 노후에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 실시한 연구에서도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80세에 그리스어판 오딧세이를 읽기 시작하고 앞으로 10년 내에 모짜르트의 소나타를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게 연습하겠다고 하는 한 노인의 예를 들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그런 노인들이 활기차고 보람찬 노후를 보낸다는 것이다.매일 뉴스데이지에 칼라로 실리는 만화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다. 그 중 이런 것이 있었다.젊은 딸이 산으로 피크닉을 다녀와서 늙은 어머니에게 산에서 얼마나 재미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어머니도 같이 갔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 했다. 딸이 자기 방으로 간 뒤 어머니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너는 아직 네 이야기를 듣고 아름다웠던 나의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를 모른다”고 중얼거리는 내용이었다.


나이 들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젊은 시절처럼 자유롭지 못할 때 회상하면서 슬며시 웃을 수 있는 추억들이 많이 있다면 나이 들어 혼자 있는 것이 그렇게 외롭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을 그냥 스쳐 지나버리듯이 바쁘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없다. 가끔은 차에서 내려 들풀을 보기도 하고 조약돌이 있는 냇가에 발을 담그기도 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같은 뜻을 공유한 이웃과 더불어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

노후에도 하고 싶은 일을 가질 수 있고, 또 아름다운 회상을 할 수 있는 것은 가치 있고 보람있는 일들을 해 온 사람들의 몫이지 인생을 허비한 사람들의 몫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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