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은 가도 미련은 남아

2005-05-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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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소(포트리)

우리네 옛 소리에 ‘꿈아 무정한 꿈아/오셨던 님을 왜 보냈나/다음에 님 다시 오거든/님을 잡고 날 깨워주소’ 하는 연민의 정을 하소연하는 노래가 있다. 무릇 이별이란 꿈속에서의 님 뿐만 아니라 좋았던 사물이며 자연의 계절까지라도 아쉬운 일말의 정감이 남게 된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봄을 저만치 떠나보내고 나서야 아쉬워 하고 그리워한다. 물론 그 뒤를 이어 ‘계절의 제왕’이라는 5월의 신록이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펼치기 시작, 현란한 녹색 풍경이 춤을 추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미숙한 아이를 홀로 먼거리에 떠나 보낸 것처럼 걸리는 정감이 남는다. 그럼 봄의 전령(傳令)으로 옛 사람들의 조춘시(早春詩)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버드나무에 얽힌 고사(故事) 하나를 소개하면서 사라져가는 봄의 의미를 되새겨 볼까.


고려 때 절창(絶唱) 시인 정지상은 번뜩이는 재명(才名) 때문에 불측한 화를 입고 세상을 떠난 불운한 시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미 총명함이 드러나 겨우 다섯 살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하인장백필(何人將白筆)/을자사록파(乙字寫綠波)... 그 누가 장한 붓을 들어/푸
른 물결 위에 을자를 새겨 놓았는가”라는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예종 때 괴과(魁科)에 장원급제, 특히 문학을 숭상하는 인종(仁宗)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정지상은 문신(文臣)으로 뿐 아니라, 말이 곧아 국사를 간하는 쟁신(諍臣)의 풍이 도도하여 좌정언(左正言)에 오르기도 했으며, 당시 하늘 높은줄 모르고 권세를 누리던 윤근, 김부식, 곽여 등 일류
명사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문명을 드날렸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서경(西京) 천도를 놓고 일어난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시중(侍中) 김부식에 의해 아깝게 주살되고 만다. 후에 사람들은 말하길 “평소 김부식이 정지상과 문자간에 이름을 나란히 하여 불평이 쌓였고 알력하는 사이였다가 <묘청의 난>에 이르러 내응을 핑계로
죽였다”고.

이렇게 억울한 죽음에 음귀(陰鬼)된 정지상은, 어느 봄날 김부식이 시를 읊어 “유색천사록(柳色千絲綠)/도화점점홍(桃花點點紅)... 버드나무는 가지마다 푸르르고/복사꽃은 점점이 붉도다, 라고 쓰면 되지 않느냐... 고 질책했다는 고사가 있다.

그런데 미국에선 버드나무는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른 봄에 피는 복숭아꽃이나 살구꽃은 볼 수가 없다. 아니, 그보다도 고향의 산자락에 무더기로 피어나던 진달래꽃은 통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혹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한 구절 인용한다면 남의 흉내라도 보겠지.

봄은 가고, 자리를 이은 신록의 풍경에 유혹되어 구비구비 교외 길을 달리다 보면 앞길이 막히는 듯 열리는 듯 막힌다. 역시 옛 시구를 빌리자면 ‘산중수복 의무로(山重水複疑無路)/유암화명 우일촌(柳暗花明 又一村)...산은 겹겹, 물은 첩첩, 길 없는가 의심했더니/뿌연 버들 환한 꽃, 또 한마음이 있는 것을 그야말로 겹사구라 꽃을 비롯 이름 모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싱그러운 신록이 울울창창한 가운데 새는 지저귀고... 바야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만큼 매혹적인 경치가 사방에 두루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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