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월이로세!

2005-05-06 (금)
크게 작게
이성철(롱아일랜드)

혹한의 엄동이 지났기에 이제는 꽃 피우고 새 우는 봄이 오려니 하고 기다렸으나 난데없이 비만 내려 처처에 물난리가 나는 중에 달이 바뀌어 ‘잔인한 달’이란 별명이 붙은 4월이 되어 허구한날 바람 잘 날이 없었는데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때가 되면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게 마련이니 드디어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봄이 왔도다!
롱펠로(Longfellow)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5월은 젊음과 사랑과 노래와 그리고 삶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상징하는 달이다.

보라는 듯이 어제까지 불어제끼던 바람도 잠잠해졌고, 같은 태양이지만 유난히도 밝고 따뜻한 햇빛은 온누리에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5월이 갖는 또 하나의 별명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훈훈한 감정이 솟구쳐 춤이라도 출 것 같다.


5월은 봄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름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초하(初夏)’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봄과 여름이 겹친 것이 5월이라고 보는 게 더 어울리는 듯 하다.14세기까지 영국에서는 1년을 여름과 겨울 두 계절로만 구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봄이 끼어든 것은 16세기 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가을이 생긴 것은 ‘초서’의 시대부터이다. 그래서 흔히 오해하기 쉬운 말로서 영어의 ‘mid-summer’는 ‘한여름’이란 뜻이 아니라 봄과 여름의 경계를 뜻함인 것이다. 따라서 ‘mid-winter’는 가을과 겨울의 사이를 말함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mid-summer’가 바로 5월인 것이다. 영국에서는 3,4월 보다는 5월에 하늘이 더 맑고 햇빛이 더 밝다고 한다.

영국의 시인들이 5월을 두고 봄을 노래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건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1년에는 열 두달이 있지만 가장 즐거운 달은 5월...”이란 구절이 ‘로빈훗’의 담시(譚詩)에도 있다.

세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5월을 이렇게 노래했다.
‘이 사랑의 봉오리는 여름에 무르익은 숨결로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아름다운 꽃으로 필 것이다” 사랑을 맹서한 연인들이 헤어질 무렵에 줄리엣이 한 말이다. 물론 이 때의 ‘여름’이란 ‘5월’을 가리킨 것이다. ‘헨리 4세’를 보면 세익스피어는 5월과 mid-summer 를 동의어로 쓰고 있다.

5월을 반기는 것이 어찌 영국의 시인들 뿐이랴! 미국의 시인 롱펠로는 “추녀끝의 새집 조차 새롭고 작년의 집엔 새들은 없다. 노래를 흥얼대는 아가씨들아 젊음을 즐기라. 향긋한 봄의 향내를 맛봐라. 아아, 5월은 언제까지나 있는 게 아니다” 롱펠로는 봄과 여름을 같이 쓰고 있다.
5월이 봄이면 어떻고 여름이면 어떡하랴! 5월의 태양은 보는 눈에 따라서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리니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사올꼬...” 이렇게 따스한 5월의 햇살과 꽃 속에서도 서글픈 ‘상춘곡’을 노래한 우리네 옛 시인도 있으니 말이다.
세월이 흘러 내년 이맘때가 되면 5월이 다시 오겠지만 그 5월을 다시 보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오늘의 5월을 한껏 노래하여 여한이 없게 함이 삶의 지혜라 생각하노라.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