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들에 훈계

2005-05-05 (목)
크게 작게
박치우(복식전문가)

“폴로니어스-(아들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몇 마디 훈계를 일러줄 테니 단단히 명심해 두어라, 알겠지? 마음속을 함부로 입밖에 내지 말며, 엉뚱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마라. 친구는 사귀되 갑작스러워선 안되고, 일단 사귄 친구라면 쇠사슬로 마음속에 매두어라.

그렇지만 새파란 풋병아리 새끼들과 악수를 하다간 손바닥만 두꺼워진다. 싸움을 하지 말 것이며, 일단 하게되면 상대방이 앞으로 너를 조심할 정도로 철저히 해둬라. 누구의 말에나 귀를 기울이되 네 의견은 삼가라. 즉,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시비 판단은 삼가란 말이다. 의복엔 지갑이 허락하는 데까지 돈을 써도 좋지만 괴상하게 치장해선 못쓰며, 값지되 화려해선 안돼. 글쎄, 의복이 날개라잖니. ----그리고 빚을 지지도 말고 빚을 주지도 마라. 빚을 주면 돈과 사람을 둘 다 잃고, 빚을 지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디어진다.


뭣보다도 네 자신에 충실해라. 그러면 자연 밤이 낮을 따르듯이, 넌 남에게도 충실한 사람이 아니 될 수 없다. 그럼 잘 가라. 자, 내 훈계가 네 가슴 속에 무르익기를 빌겠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 3장에 아들을 전송하며 훈계하는 대사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최첨단 과학문명을 앞세우며, 신사조라 마구 떠들어 대지만, 이런 고전은 지금도 우리 마음에 새로이 와 닿는다. 그리고 영국의 이식문화의 이 나라 주류 후예들의 의식구조가 이 대사 속에서 엿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훈계 중 의복에 대한 것은 지금도 미국의 엘리트들이 그들의 의생활 철학으로 알고 있다. 영국의 이식문화가 미국동부에 처음 이뤄지면서 8대 명문 사립대학이 세워지고, 경영대 출신은 뉴욕 월스트릿으로, 그리고 법대 출신은 워싱턴 D.C.로 큰 뜻을 안고 떠나는데, 그들은 학교에서 쌓은 지성과 외형적인 품격도 중요시 했었다.

개인을 위한 지성보다는 사회의 지도자를 위한 지성을 배출했던 동부의 명문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한 인격자로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외모를 갖추는 것도 중요했었다. 화려하지 않고 남의 눈에 튀지 않는, 검소한 옷차림을 컨서브티브한 옷차림으로 불리어 세련된 지적 뉘앙스가 풍긴다. 이런 드레스 매너는 아버지로부터 익혀왔다.

동부의 학생들은 보스턴과 뉴욕을 연결하는 기차를 타고 맨하탄 42가 그랜드센트럴 역에 내려 매디슨 43가에 있는 부룩스 부러더스에서 샤핑을 했다. 지금도 그 상점이 있지만 경영난, 그리고 상업화 시대를 맞아 그 풍모는 많이 변했지만 그 당시는 보수적인 순 영국풍의 컨서브티브
한 품위를 내세우는 점포였다. 역대 대통령 양복도 여기서 만들어졌다. 유명한 아이비리그 스타일도 여기서 나왔다,

근래 갑자기 밀어닥친 PC 문화로 노트북을 어깨에 매고 셀폰을 들고 거기에 MP3까지 귀에 꽂고 지퍼 재킷을 입은 닷컴 스타일 차림을 한 사람들이 컨서브티브에 반항이나 하듯이 거리를 메운다. 1950년대 머리를 맨 히피 문화가 그러했었다. 그렇지만 이 나라 전통적인 정신적 유산
은, 시대적 이런 변화를 외면한 채 지켜져왔다.

이제 이 나라에 이민 온 1세들은 자식들에게 이 나라에 필요한 유산이 어떤 것이 소중한지 생각해야 할 때다. 후일에 자식들은 아버지의 훈계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길게 남지만, 돈의 유산은 영원히 감춰질 뿐인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