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에서 되살아나는 이승만 박사

2005-05-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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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호(이승만 기념사업회 시애틀지회원)

벌써 5월!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다 하더니 추위도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한창이던 4월, 그 어떤 유명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일컬었는데… 일제에 의해 나라가 지구상에서 없어졌던 대한제국을 되살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세기의 거인 우남 이승만 박사
에게는 하야의 쓰라림을 안겨다 주었던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달이다.

돌아 보건대,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 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집권 자유당은 부통령에 이기붕 국회의장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세계에서 유례 없는 부정선거를 실시하였다.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마산에서 학생 김주열이 희생됨으로써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마침내 4.19 학생의거
라 일컫는 역사의 획을 긋게 되었다.


학생들의 첫 구호는 ‘부정선거이니 재선거 하라’였지 ‘대통령은 하야 하라’가 아니었다. 대통령 후보로 입후보한 야당의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발병하여 워싱턴 DC 소재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아깝게도 사망하였기에 무투표 당선이 되었다. 이 때 자유당이 즉각 “부통령 선거를 다시 실시한다”고만 할 것을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시일을 보냈기에 급기야는 고려대 교수진까지 시위에 합류함으로써 더욱 악화 되었으며 경무대
(오늘의 청와대) 앞 발포로 말미암아 100여명의 꽃다운 청년학생들이 유명을 달리 하였다.(필자
는 이 날이 오면 그 희생자와 유족 위에 신의 가호와 위로가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경무대 앞 발포사건을 보고받은 85세의 이 대통령은 “아니 누가 누구를 쏘았다는 말인가? 어
제 수도육군병원에 가서 부상 학생들을 위로하고 조속한 쾌유를 빌고 왔는데...” 하고 노발대
발 하였으며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스스로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해야지” 하고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4월 26일 하야 성명...구한말 대한제국의 실정을 규탄하였고 감옥에도 갔었던 그... 그
는 시위자들의 심정을 읽고 스스로 물러난 위인이었다.
우남 이승만 박사에 대해 부정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그 분의 순수한 나라
사랑과 겨레 사랑, 숨겨진 공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에 세계 정치의 중심도시이며 세계 제1의 도시에서 만 1년 전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가 탄생하였다. 청년시절 독립을 외치는 연설회도 한 뜻깊은 곳에서 그 분을 추모하는 사업이 되살아난 것은 참으로 경하할 일이다.

재미동포 뿐 아니라 전 백의민족은 그 분의 은혜를 깨달아야 할 것이, 그 분의 반공정신이 6.25 동란에서 김일성의 적화통일을 막았기에, 우리가 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북한동포처럼 굶어죽지 않고 자유세계에서 잘 살고 있음을 알아야겠다.은혜는 갚아야 하는 법, 이박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가 이룬 공을 말살해서는 바른 역사가 될 수 없다.

대뉴욕지역에서 이승만 박사의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이승만 기념사업회장은 의학박사이며 또한 신학박사인 윤세웅 비뇨기과 전문의이니 믿음직스럽고 그를 보좌하는 김상모 감리교 감리사와 조헌태 국제변호사가 부회장으로, 김명신 평안도민회장이 총무로 도우니 이 사업은 크게 발전할 것 같다. 다시 뉴욕에서 되살아난 이승만 박사, 오는 14일 있게 될 기념사업회 행사에 참가함으로써 우리의 은인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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