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에 대한 존중을...

2005-05-04 (수)
크게 작게
이정은(취재2부 차장대우)

한인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대뜸 호구조사부터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상대의 나이에서부터 부모의 직업, 거주지, 고향(본적), 학벌은 물론, 기혼자라면 남편이나 아내의 직업에 이르기까지 궁금한 것이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참으로 놀라울 정도다.

게다가 20~30대 연령이라면 애인은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또 자녀는 몇 명이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상대의 나이나 결혼 여부를 한인들처럼 그리 무례하게 묻지 않는다. 반지를 끼고 있으면 `기혼자인가보다’라고 미루어 짐작하다 대화 중 상대가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내면 그때 가서 비로소 대화로 거론되는 것이 예의로 여겨진다.


반면, 한인들은 부모 직업으로 상대의 출신 배경을 한 순간에 평가한다. 거주지 역시 은근히 현재의 경제적 능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로 여겨진다. 기혼 여성들 모임에서는 남편 직업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결정지어지는 분위기다.

이뿐만 아니다. 소유한 차종에 따라 주변에서 받는 대우나 시선에도 큰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평가받기 힘든 문화다. 요즘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국 한인사회에서도 이혼의 아픔을 겪은 가정이 많다. 또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배우자와 사별의 아픔을 겪은 가정도 있을 수 있고 결혼은 했지만 자녀 없이 사는 가정도 크게 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별 뜻 없이 내던진 남편, 아내, 자녀에 대한 질문이 그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어른들 뿐 아니라 일심동체 `부부’였던 부모가 남남이 됐거나 사별의 아픔으로 한쪽 부모를 잃은 가정의 자녀들이 받아야 할 상처는 더욱 클 수 있다.

단순히 아이의 귀여움을 칭찬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의식중에 “너희 아빠는 뭐하시니?”라고 묻는 한인들의 잘못된 질문 습관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는 영원한 흉터가 남겨질 수도 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내 가족과 가정이 소중하듯 남의 가정도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각 가정마다 크고 작은 가정사가 있기 마련이다.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거나 들춰내지 않아도 되는 타인의 사생활이나 사연들을 불필요하게 꼬치꼬치 캐묻는 한인들의 잘못된 습관도 이제는 개선돼야 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