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대중과 조영남

2005-04-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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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김대중씨의 숨겨진 딸에 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자동차사업을 하다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버린 뉴저지의 김대중씨가 아니고 한국의 대통령을 지내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씨를 말한다. 도덕군자 같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숨겨진 딸이 있다니 어
처구니없는 것이 세상사인 것만 같다.

또 10년 넘게 KBS에서 ‘체험 삶의 현장’을 진행해 오던 조영남씨가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곤욕을 치루고 MC마저도 사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오이 밭에 가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조영남은 한일관계가 독도와 일본교과서 왜곡문제로 한창 예민할 때 “일본이 한 수 위”라는 아리송한 말을 해 한국 국민들의 비난을 사게 된 결과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박 전 대통령은 “남자의 허리 아래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정치를 하면서 요정을 드나들고 시중드는 여자들을 만나다 보면 여자관계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니 그런 말을 뱉었는지도 모른다. 정인숙의 아들이, 박 전 대통령의 아들이니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아들이니 하는 것도 정치인들의 노리개 노릇을 하던 한 여인이 낳은 슬픈 과거사로 돌아가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정 전 총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평생 민주화운동에 몸바쳐 일하며 죽음의 문턱까지도 갔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한 여인의 불행한 과거사가 있다니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나보다. 방송에서 김 전 대통령의 딸이 얼굴을 가린 채 울며불며 털어놓은 말들은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아직도 김 전 대통령측이 이렇다 할 변명 한마디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프랑스의 대통령을 지낸 미테랑이 죽었을 때 그의 숨겨진 딸이 장례식에 나타났다. 남녀관계의 문제를 관대하게 봐주는 프랑스였는지는 몰라도 미테랑의 숨겨진 딸이 밖으로 노출되었을 때 프랑스 국민들은 미테랑을 헐뜯지 않고 오히려 그를 미화하기도 했다. 프랑스 사람들의 관습과 그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한 예였다.

한국도 많이 발전하였는지,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 밖으로 노출되었는데도 오히려 그 사건을 미화하려 하며 조용히 넘기려는 움직임이 있음도 볼 수 있다. “전 대통령의 숨겨진 여인과 딸의 사건이 터졌는데도 너무나 조용하다”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지인은 탄식했다. 물론 현 노무현 대통령 정권이 김대중 정권을 이어받아 온 영향 탓도 없지는 않을 게다. 1970년에 태어나 생활비를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으며 자라났다는 그 딸은 지금 35세다. 한 가지 의문점은 그녀의 어머니, 즉 전 대통령의 자식을 낳은 그 여인이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2000년에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영향 하에 혹은 어떤 권력이 그녀의 자살을 부
추켰는지는 의문이다.

가수로 화가로 작가로 MC로 팔방미인처럼 한국을 누비던 조영남씨가 잘 뜨며 오래 가는가 싶더니 추락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던가. 조영남은 너무 날개를 많이 달아 추락한 것 같다. 얼마 전 그는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을 출간했다. 책 제목이야 엉뚱할 수록 잘 팔리니 그렇게 달았는지 모르지만 좀 심했다.

그런데 그는 또 ‘일본이 한 수 위’라는 말을 해 일본의 모 신문이 이것을 그대로 보도했고 한국 언론이 그 신문내용을 보도하면서 추락의 근거를 낳게 했다. 아무리 잘나가는 국민적 가수요 MC라 하더라도 피할 건 피했어야 하는데 자신을 너무 과신했던 것 같다. 그의 변명은 일본이 한 수 위라는 것은 실속만 차리려고 하는 일본을 비방한 것이라 한다.

민족주의를 탈피하여 전 세계를 하나로 수용할 수도 있지만 민족주의를 왜곡하게 해서는 안 된다. 민족은 뿌리이기 때문이다. 조영남이 민족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정서를 너무도 몰랐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넘어야할 선이 있고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다. 또 때가 있다. 조영남씨는 해
서는 안 될 말을, 해서는 안 될 때에 한 것 같다. 국민들의 분노가 조영남씨를 추락시킨 것이다.


김대중과 조영남. 살아있는 사람들로서는 아주 잘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은 숨겨진 딸이 나타남으로 인해 평생 닦아온 그의 명예에 먹칠을 하며 추락하고 있다. 조영남씨는 너무 고개를 떨구지않고 함부로 말을 내뱉더니 그만 혀를 잘리고 만 꼴이다. 두 사람 다 지금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엔 비밀이 없다는 것과 아무리 잘나가도 겸손하여 때와 시를 구분할 줄 알아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60이후의 생, 즉 말년이 더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못 믿는 세상에 살면서 남을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도 안 되지만 두 사람의 추락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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