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집 가는 날

2005-05-02 (월)
크게 작게
조봉옥(MOMA 근무)

아득하게 느껴지는 몇십년 전, 우리는 미 중부에 있는 아이오와에서 결혼을 했다. 둘 다 가난했던 대학원 시절이었다. 사랑하는 딸이 홀로 먼곳에서 시집을 간다니까 그 당시 말도 못하게 까다로웠던 미국 여행조건을 다 거치고 엄마는 나에게 웨딩드레스, 한복, 원삼, 족두리 등 가방 가득히 들고 오셨다.일가친척은 없었으나 우리가 다니던 대학의 교수들, 학교 친구들, 그리고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계있었던 몇 분 한국유학생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우리는 조그만 교회에서 식을 올렸고, 리셉션 때 나는 화려하고 우아한 원삼으로 갈아입고 손님을 향해 큰 절을 올렸었다.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의상이 신비해서 그 고장 신문에도 커다랗게 사진이 나왔었다.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되고 조상의 지혜를 존경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재미있다. 결혼 때의 의식은 특히 더 재미있다. 한국 폐백 절차에 관해 엄마가 쓰신 글의 한 부분만 간단히 적어 본다.


“손들어 큰절 하는 것은 시 부모님이 제일 먼저 네 배(拜)반을 받는다. 그리고 시 아버님만이 대추를 던져준다. 시 아버님이 안 계시면 그 때는 시 어머님이 주신다.다음은 시 조부모님이 계시면 역시 큰절로 네배 반을 올린다. 시 부모님과 시 조부님께 큰절 올릴 때는 활옷에 화관 족두리를 쓴다.

그런데 옛날에는 모란꽃송이를 수놓은 활옷에 화관 족두리를 쓰고 큰절 하는 것은 시 부모님만 받을 수 있는 특권이라 들었고 다른 분들에게는 원삼에다 칠보 족두리를 바꾸어 입고 한다고 한다.

폐백을 다한 다음에는 시댁에서 예물을 내리는데, 시 어머님은 시댁 전래의 패물을 주고 관례벗김을 바꾸어 입힌다. 관례벗김은 대개 저고리 적삼(노랑 회장 저고리, 연두 회장 저고리와 연분홍 회장 저고리에다 다홍치마)을 주고 패물도 노리개 삼작으로 내린다”대추는 수명장수의 과일이라고 옛날부터 믿어 왔고 시 아버님은 절 받은 후 며느리에게 던져주면서 아들 많이 낳으라는 덕담을 하는 것이 역시 전통이라 하셨다. 시 어머니께서는 정성들여 만든 육포를 드린다는 글귀도 눈에 띄었다.

내가 입었던 원삼과 족두리는 우리 서양 며느리가 결혼 때 착용하고, 남편이 입었던 한복은 아들이 입고 우리에게 큰절을 했다. 그 날 온 친지들이 며느리 치마폭에 대추를 던져주며 아들, 딸 건강히 낳고 잘 살라는 축복의 말들을 해 주었다. 그런데 며느리 말이 그 축복대로 잘 되었
으면 줄줄이 26명의 아들을 낳아야만 되더란다.

아직도 내 장롱 속에 잘 보관되어 있는 원삼은 우리 딸이 언젠가 시집가는 날 입을 것이고, 26명의 손자 대신 귀중하게 태어난 우리 예쁜 손녀 둘 역시 옛날 옛적 증조할머니가 멀리 한국서 들고 오셨던 이 아름다운 옷을 그 언젠가는 입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