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니 날에

2005-05-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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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여자를 이야기 할 때에는 외모를 따지지만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야기 할 때에는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 어머니에게는 외모가 없다. 다만 내용만 있을 뿐이다.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항상 당신이 ‘못난 어미’라고 스스로 낮추어 말하는 어머니에게는 얼굴이 없다. 다만 어머니라는 커다란 내용의 실체 뿐이다.

어머니날이 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의 외관이 늙었던 젊었던, 또한 곱던 곱지 않던 간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어머니를 사랑한다. 어머니가 가까이 있어도 항상 그립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으면 더욱 그립고, 어머니를 여의고 나면 처절하게 그립다.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하늘과 땅, 바다, 그리고 어머니 눈속에서 비추이는 깊고 맑은 빛과 희생이다. 우리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 빛을 사랑이라고 말해 왔다. 그 사랑은 당연히 우리에게 와야 한다고만 여겼고, 우리는 그 뼈아프게 갈아낸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만 했다. 내가 드리는 것 하나 없이 주는 것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만 생각을 했다. 아비는 아비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밤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잠이 와도 앉아서 졸았다.


어머니에게는 꿈들이 버무려진 청춘이 없는 줄만 알았다. 어머니는 운동을 많이 해서 팔 힘이 그렇게 센 줄만 알았다. 어머니는 전생에 파출부였거나 옛말로 식모였을 거라고 어렴풋이 그렇게 여겼다. 또한 아이를 돌보는 보모였을 거라고 여겼다.어머니는 남녀간의 사랑도 모르고 살아온 여자라고만 여겼다. 어머니는 멋도 모르는 여자라고 여겼다. 어머니는 항상 입맛이 없는 여자라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먹을 줄 모르는 여자인 줄 알았다. 먹지 않아도 항상 배가 부른 여자인 줄만 알았다. 어머니는 엄동설한에도 추운 줄 모르는 여자라 구들목이 찬 윗목에서만 자는 줄 알았다.그런 것들이 지금에 와서 나를 몹시 슬프게 하고 가슴을 저미게 한다.

내 어머니의 이름은 ‘공주’였으나 칠남매를 옆구리에 차고 하녀처럼 살았다. 권공주! 공주의 이름을 가진 부잣집 딸이 사시사철 집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치고, 겨울이면 휘겨 스케이트를 타고 공주처럼 살다가, 충청남도 공주 사람인 내 아버지를 만나 살면서 팔자가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그 해 12월 25일, 아침 성탄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외출한 아버지의 점심상을 차려놓은 후, 춥다 하시며 공능동 목욕탕을 찾아 가더니 목욕 후 거기에서 세상의 모진 인연을 어깨에서 내려 놓고는 하늘로 돌아 가셨다. 그 때 나이 66세.

공주가 공주 사람에게 시집을 가더니 태능 근처 공주의 무덤이 있는 공능동 동네에서 돌아 가시고는 하얗게 뒤덮힌 12월의 눈을 밟고 공주땅 하대리 선산을 찾아가시어 묻히셨다.

온통 서생 뿐인 시집에서 유일하게 철도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평생을 허덕이면서 산 어머니. 칠남매가 있어도 어머니 한 분의 힘만 못했으며, 칠남매가 있어도 어머니 한 분을 돌보아 드리지 못하였다. 어머니 한 분은 열 자식을 편히 거두어도 열 자식이 있어도 어머니 한 분을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 가슴을 치며 태장을 친다.조골조골한 카네이션 꽃잎, 애를 쓰면서 접히고 또 접힌 어머니의 따스했던 마음이겠지. 아니면, 멀리 있어도 보이는 연분홍의 눈길이겠지.

카네이숀 한 송이를 심장 앞 옷깃에 달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슬퍼하는 사람들, 내용은 한 가지인 것이다. 그리운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심장으로 부르니 온몸에 피가 되어 흐르는 어머니의 형체. 어머니 날은 어머니 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받은 것이 사랑이라면 은혜로 돌려드릴 줄 아는 날, 그 날이 어머니 날이고 또 어머니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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