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중국이 일본 비판 자격 있나

2005-04-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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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교과서 개정으로 인해 한국에서 반일감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에서도 일본의 과거사 미화가 반일감정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반일감정이 현실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한중 두 나라에서는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대중 시위와 정부의 정책이 일맥상통한 공조 보조를 띠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 관한 한중간의 공조는 미국에서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 뉴욕의 유엔본부 앞에서는 지난 22일 한인과 중국계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어 24일에는 LA에서도 한인과 중국계 등
1,500여명이 반일시위를 벌였다.

일본이 역사를 미화하여 과거의 잘못을 덮거나 합리화하는 행위에 대해 한중이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과 중국이 모두 과거의 피해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에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 좋은 이웃일까. 역사 왜곡과 영토분쟁으로 본다면 중국
은 일본보다도 더 큰 위협을 주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동북공정이라고 하는 고구려사 왜곡이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고구려는 한민족의 대표적 고대국가이다. 한반도의 북부와 남만주 일대를 지배했던 고구려계의 일족은 한반도의 중부로 남하하여 백제를 세웠다. 3국시대에 두 나라가 고구려 계통이었으니 한민족에서 고구려의 역사는 뺄래야 뺄 수가 없다.

반도지역에서 고대민족이 이동한 역사를 보면 한반도와 비슷하게 남하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 에게해에서 번영했던 크레타문명은 그리스 본토인의 침략으로 멸망했고 그리스 본토도 북방에서 내려온 도리아인이 차지했다. 그리스는 나중에 북방의 마케도니아에 점령되어
오늘날 그리스가 형성되었다. 현재의 일본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되어 이루어진 민족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역사를 한국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한민족의 영역이 대동강 이남으로 줄어들었으나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해 옛 고구려의 땅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한민족의 세력이 미약하여 조선시대에 겨우 찾아놓은 땅이 지금과 같은 한중 국경선이다. 국경지대인 간도지방에는
한민족이 많이 살고 있지만 한민족이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겼던 1909년 청일간의 간도협약으로 일본이 중국의 이권을 챙기는 대신 이 땅을 중국땅으로 인정했다. 그러므로 이 지역은 독도처럼 장차 한중간 영토분쟁의 대상이 되는 지역이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이와같은 한중간의 영토분쟁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던 국내성이 만주땅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 도읍지를 성역화하여 중국문화재로 등록함으로써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국가로서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한 것을 중국의 통일전쟁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의 주장처럼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면 간도만 중국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한반도의 북쪽 절반이 중국의 땅이라는 황당한 주장이 유추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영역이 남쪽은 남해안으로 변동이 없었으나 북쪽은 중국의 세력 변화에 따라 변화무쌍했던 것이다. 또 중국은 수천년간 독립국가이었던 티베트를 강점하여 자기네 영토에 편입시켜 놓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있는 나라이니 일본에 못지 않게 영토적 야욕을 가진 나라이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터무니 없는 일이며 교과서 개정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미화시키는 일이므로 한중이 반일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일본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한국은 독도를 빼앗으려는 일본을 경계해야 하지만 고구려사를 빼앗고 있는 중국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일본이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중국이 이미 상임이사국으로서 강대국이 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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