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를린 장벽, 동경 장벽

2005-04-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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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2차대전 후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놓은 베를린 장벽을 작년에 가 보았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시무시한 높은 벽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그 높이나 길이에 있어 너무 초라했다. 다분히 상징적인 것 같다.

뒷뜰 울타리 보다 약간 더 높고 더 길다고나 할까, 자유분방한 그림들과 낙서들 한쪽에는 한국 화가의 그림도 눈에 띄었다. 울타리 건너편 동쪽으로는 옛날 고풍스런 주택들이 조용하게 들어서 있는 평화스러운 마을임에 틀림 없었다.


D.M.Z.도 없었고 동족상쟁의 비극 6.25를 겪지도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 마주보고 살고 있다. 구태여 DMZ까지 필요없는 민족인지도 모른다.2차대전의 주범국 독일과 일본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 치고는 너무 가벼운, 우리가 받았던 고통에 비해서는 어린애 장난 같은 느낌이 들었다.

36년간 착취도 모자라서 또 전쟁까지 일으켰던 그 벌은 마땅히 일본이 받았어야 할텐데. 6.25 동란을 일본동란으로 동경 시내를 반으로 쪼개 높은 장벽을 쌓고 일본을 남북으로 반 토막을 냈어야 했을 것을...
우리는 대신 매를 맞고 몸도 쪼개며 죽게하고 종족살생, 멸종 직전까지 올 뻔했다. 마땅히 일본이 져야 할 죄 짐을 우리가 대신 뒤집어 쓴 것이다.

요즘 눈꼽만한 섬 하나를 가지고 시시비비 하는 것을 보면 인면수심, 너무도 염치가 없는 종족들임엔 분명하다.누가 우리를 반으로 쪼개어 놓았을까.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아무 말 없이 수모를 견디고 이겨온 독일에 비해 시끄럽고 무질서 속에 어수선했던 피도 안 마른 어린 학생들까지 민주공산주의를 따지며 서로 살생했던 어두웠던 시절 전세계인들이 얼마나 우리를 무시하고 야만이라고 했을까. 하나님도 무질서는 원치 않았다. 혼돈된 우주에 창조의 질서를 가져왔다.

베를린 장벽 안쪽에 있는 브란덴브루그 광장에는 자유와 평화의 기가 차고 넘쳐 흐른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가득 차 있다. 억눌림, 가난, 전쟁 속에서 오래 헤어졌던 천진스런 연인들의 다시 만남처럼 진정한 자유의 고귀함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번 이 광장을 방문했던 노대통령의 얼굴 표정 속에서도 자유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우리는 서로가 돌이킬 수 없는 너무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다. 이제는 깊이 패인 상처를 꿰매고 아물게 하자 판문각 앞에 자유의 광장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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