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찻잔과 미술관

2004-12-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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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옥(MOMA 근무)
건축가 요시오 타니구치(Yosio Taniguchi)가 지어놓은 일본의 한 미술관을 둘러보던 현대미
술관(MOMA)의 큐레이터가 감탄을 했다. “아, 이 건물은 마치 완벽하게 빚어진 찻잔처럼
아름답군요”
타니구치가 조용히 대답했다. “아름다운 찻잔의 형태를 보며 찬사를 보낼 수는 있지만 그
잔에 차를 부었을 때의 조화를 보기 전에는 아무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타니구치가 뉴욕에 지어놓은 걸작, 75주년을 기념하는 11월 20일에 문을 연 MOMA라는 대
형의 유리 찻잔 속에 지금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이 차곡차곡 들어가 찰랑거리는 조화를 이
루고 있다. “나는 만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의 겸손한 결론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요새 신문이나 뉴스에서 MOMA에 관한 보도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나는
그저 뒷점 이야기나 짧게 해보려 한다.
1929년 단 몇 점의 그림으로 첫 발을 내디딘 MOMA가 53가의 현재 위치에 자리를 차지하
고 있는 동안 몇 점이 10만을 웃도는 규모로 커지자 증축의 결정이 내려지고 2002년 공장을
개조한 퀸즈의 임시건물로 모두 이사를 갔었다.
그동안 퀸즈에서도 ‘마티스-피카소’ 등 주옥 같은 전시를 꾸준히 해 왔으나 우선 그 많
은 소장품들을 보관해 둘 장소가 부족해서 휴스턴, 베를린, 동경의 미술관들에 대거 빌려주
었는데 이토록 많은 MOMA의 소장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또다시 없을거니까 가
는 곳마다 기록에 남을 정도로 많은 관람객이 몰려왔었다. 특히 베를린의 경우에는 너무 열
성 인파들이 새벽부터 줄을 지어 밤 2시까지 문을 열었다는 기록이다. 그 인파 중 백만번째
로 입장한 사람에게는 뉴욕왕복 항공권과 MOMA 오프닝 초대권이 안겨지는 행운도 있었
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소장품이라 할 수 있는 피카소의 한 그림은 뒤에 남아 있었다. 바로
‘아비뇽의 여인들(Les Demoiselles d′Avignon)’. 절대로 빌려주지 않는 그림이다. 다른
작품들이 여행하는 동안 이 그림은 작품 보존실에서 세밀한 진찰을 거치며 치료를 받고 있
었다.
1907년 그린 이 획기적인 작품은 그 새 수많은 미술품 보존가의 손을 거쳐 왔다. 문제는 그
림을 보존하는데 가장 효과있는 방법이라 써 왔던 1920-60년대의 왁스와 바니쉬(Varnish)가
실은 색을 변하게 하고 균형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그 때는 그 반대로 믿었다는 것이다.
MOMA의 보존과에서는 근 10개월에 걸쳐 차근차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X-레이를 찍어
세부를 들여다 보며 묵은 때와 왁스 등을 조심스레 닦아내고 떨어져 나간 페인트 부분에 손
질을 하는데 온갖 정성을 부어 넣었다.
그 결과는 피카소의 정열적인 붓 자국와 싱싱한 색채를 그가 원했던 본래 상태로 되돌려 놓
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아비뇽의 여인들’은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새 집 MOMA의 4층에 전시되어 있으며
해외에 나가 있던 모든 작품들도 집의 품으로 돌아와 착착 자리를 잡고 사이좋게 전시되어
있다.
아름다운 찻잔에 정말 좋은 차가 부어져 있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맨하탄의 새 명
물 - 이 빌딩은 건축 그 자체보다 사람과 예술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타니구치가 만족해 하듯 피카소도, 마티스도, 근 3세기에 걸쳐 전시되어 있는 예술가들도 모
두 모두 만족해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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