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다는 것은

2004-12-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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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대표)

아침은 마음부터 분주해지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하루를 시작하는 그 순간은 늘 새롭고 엄숙하고 조심스러운 기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예기치 않은 감동과 기쁨으로 설레는 하루를 시작하게 된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으로 추방된 출감자 중 한 사람인 Y군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동안 추방당한 십여명의 그들로부터 자주 전화가 오지만 늘 들려오는 전화의 내용은 마음을 무겁게 하는 내용들이었다.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들이닥친 이민국 직원에 의해 강제 추방당한 그들은 친지도 없이 언어도, 문화도 적응하기 힘든 그런 상황 속에 던져진 자신들의 새로운 현실에 절망감을 토로하는 한숨으로 이어지는 전화 내용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모습으로든지 적응이야 해 나가겠지만 대책 없이 지구 반대편으로 내동댕이 쳐져야 하는 그들의 현실은 죄의 대가를 교
도소에서 십여년을 지불하고 새로운 인생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하려는 그들을 다시 한번 진저리 치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미약한 것들 뿐이다. 그리고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는 그것 밖에 할 수 없는 내게 그들은 “전도사님에게 실망시키지 않고 꼭 좋은 소식을 드릴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
어요”라며 내가 주지 못하는 용기와 위로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을 들으며 나는 늘 나의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이런 내게 이 날은 밝고 웃음이 깃든 목소리로 그가 전화를 해 온 것이다.
추방당한지 7,8개월이 지나면서 주거문제와 직장,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도 무엇 하나 안정이 안되던 그가 이제는 영어학원 강사가 되어 모든 것이 안정되어가고 있는데다 그동안 큰 집으로 대두되었던 군복무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다며 내게 모처럼 좋은 소식을 알리고 싶어 전화를 했단다.

연신 좋아 싱글벙글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가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잠깐 의아해하던 나는 “여~보~세요” 하며 조심스레 주저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 주춤하다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교도소 선교를 하기 전, 14년 전에 처음 만났던 K군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놀라서 말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는 “누나...” 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이거 누구야? 너 나쁜 녀석 아니야!” 하며 나는 책망과 원망이 섞인 반가움으로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14년 전, 그가 18살이었을 때 교도소에서 만났고 10년 만에 나와 플러싱에서 출감생활을 하며 힘든 적응을 해 나가던 그와는 한 식구처럼 가깝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교도소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어느새 프로급이 되어버린 그는 또한 교도소 내에서는 교도관과 제소자들에게 소문난 신앙인이 되었다. 거칠고 우악스러운 깡패가 더 이상 아닌 순한 테디 베어(곰)가 그의 별명이 되었다. 사람이 신앙으로 달라진다고 하면 얼마나 다른 인격으로 달라지는가를 그를 보면 알 수 있었다.입만 열면 온갖 욕설로 밖에 말 못하던 그가 신약성경의 80% 가량을 영어와 한글로 줄줄이 외워 말끝마다 성경귀절이 아니면 말을 못하는 그가 되어버렸다.

그 앞에 있으면 전도사인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성경을 줄줄이 외우는 그는 실은 검정고시 시험을 7번이나 떨어진 공부에는 아주 아둔한 그이기에 성경을 줄줄이 외우는 그를 보면 성령의 하시는 일을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출감후 청소년 사역을 절실히 하고 싶었고 성실히 살고 싶었지만 그를 담당한 형사는 그를 계속 지키며 그를 힘들게 했다. 결국 좌절감을 느낀 그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한국으로 가게 되었고 그를 말리던 내게 죄책감으로 지난 3년간 연락을 안 했던 것이었다.

그런 그가 이젠 한국에서 대기업 소속 운동선수가 되었고 금메달 따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운동하며 성실히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야기 했다.

같이 룸메이트로 있는 Y와 함께 이제,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이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겠다고 말하며 전화에다 대고 “누나 사랑해요” 하며 고함을 치며 깔깔 웃어대는 그들은 내게 영원한 작은 곰 같은 사랑하는 동생들이다. 산다고 하는 엄숙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어떤 모습으로든지 자신들의 몫을 다하는 추방된 그 곳에 있는 그들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와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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