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마음의 결실

2004-11-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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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늘 아옹다옹하면서 ‘내가 먼저’ ‘내가 더 많이’ 하면서 경쟁하고 있다. 죽고 나면 다 소용이 없는 일을 항상 욕심을 내면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것을 보면 좋은 일도 살아 있을 때, 건강할 때, 수중에 돈 있을 때 해야지 나중으로 미루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어떻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자’는 말과 같이 오늘 해야 할 일은 가급적 내일로 미루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친구, 이웃간에 주고받는 대화도 좋은 것이면 무엇이든 생각날 때 바로 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면 뒤로 미루지 말고 제때 제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몸과 마음에 좋다는 조깅이나 새벽 기도도 따지고 보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어나야 하므로 매우 피곤한 일인데도 사람들은 좋다고 느끼기에 힘들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다.

어떤 날은 피곤해서 뒤로 미루려 하다가도 갔다 와서 힘 생기고 몸과 마음이 산뜻한 걸 보면 그대로 미루고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어도 일어나 조깅이나 기도회를 다녀온 뒤 하루 일과를 기쁘게 시작한다는 것.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경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중에 1,000달러가 있으면 ‘2,000달러가 되면 내가 선심 쓰지’ 1만 달러가 있는 사람은 ‘2만 달러가 되면 남을 위해 돈을 쓰지’하면서 자선하는 마음과 행위를 자꾸 뒤로 미룬다. 그러나 돈이란 생각대로 잘 안 불려지는 법. 결국 그의 생각대로 자선하고자 하는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자연히 접어지게 되어 있다. 선심도 현재 가진 바 있는 상태에서 생각날 때 바로 해야 가능한 것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빌 게이츠도 겸손하고 좋은 일은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다. 그는 자선단체에 자신의 재산을 굴려 불린 전 자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500억달러를 자선단체에 기증했다. 그러고도 그는 축복을 받아 선지 여전히 세계 제일의 갑부이다.

주머니에 1달러 있는 돈을 가지고도 ‘콩은 나눠먹어야 맛이 있다’는 속담을 실행해 옮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진 것이 적지 않아도 ‘나중에 더 벌면 하지’ 하고 미루는 사람은 실제로 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 그런 사람은 뒤로 미루다 결국 죽을 때까지 써보지도 못하고 끝이
난다.

한인교회도 돈이 많은 곳은 많지만 사실 한인사회나 이웃 커뮤니티를 위해 구제나 자선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웃을 생각하는 행위나 봉사, 실천하는 마음도 결국 교회가 부유하다고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강단에서 설교로만 좋은 일 하라고 외쳤지 실제로 선을 행
하지 못하는 교회도 없지 않다.

커뮤니티 센터 기금모금 현황을 통해서도 보면 자체교회도 없고 부유한 교인은 커녕, 교인수도 많지 않은 교회에서 오히려 이웃을 위해 선을 실천하는 것을 본다. 매년 실시되는 사랑의 터키 기금모금에서도 어떤 가게는 아무리 불경기라도 단돈 1달러라도 매년 참여하는가 하면, 어떤 가게는 무조건 ‘매상 없다’ ‘손님 없다’ ‘경기가 나쁘다’고 외면, 죽어도 안내는 곳도 없지 않다고 한다.


이런 경우 솔직히 축복 받을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성경에도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남을 돕는 것은 내게로 돌아올 축복의 예비이다.

그러므로 나의 도움과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 뒤로 미루지 말고 당장 서둘러 좋은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물질도 문제지만 마음 씀씀이도 문제이다.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의 죽음까지
도 포기하게 만든다.

한인들 가운데는 성질이 급해 함부로 나쁜 말을 잘 토해내 아이들을 가출시키고 배우자를 칼로, 총으로 목숨을 앗아가게 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나쁜 것은 하기 쉽고 좋은 것은 뒤로 미루다 보니 좋은 일을 잘 못하는 것이 우리의 습성이다. 연말을 앞두고 맞이하는 결실의
계절, 물질뿐만 아니라 남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마음의 결실도 우리에게는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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