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집안 카드

2004-11-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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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환(뉴저지)

우리집에는 큰 한국화가 하나 걸려 있다.보통 가정집에 걸기에는 큰 80호짜리(117cm x 216cm)지만 그 크기가 우리 집에는 잘 맞는 것 같다. 우리 집에 처음 오는 사람마다 그 그림이 너무 좋다고 칭찬하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화가 친구 자랑을 시작한다. 그 화가의 성가가 높아야 그 그림도 더 좋아보이기 때문이다.

1982년이면 대부분의 재미 동포들이 모든 면에서 여유가 없이 살던 때였다. 그런 당시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기인으로 많은 소문을 뿌렸던 친구 화가가 그림 전시차 불쑥 뉴욕으로 날아왔다. 그 당시에는 미국 와서 전시회를 가졌던 한국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거의 한 점의 작품도 팔지 못하고 그냥 맨손으로 귀국하던 때였다. 그 좋은 예술품을 헐값에라도 처분할
수 있었으면 성공한 분이었고 거의 모두 친구나 지인한테 그냥 맡겨두고 맨손으로 귀국하던 때였다.


그럴 때 그 친구 화가답게 별안간 뉴욕에 도깨비같이 나타난 것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그의 그림은 구하기가 어려운 지경이지만 그 당시 뉴욕은 그렇지 않았다. 그 크기가 좀 작은 그림들은 고등학교 동기들이 상호 의논해서 하나씩 샀지만 그 중 가장 큰 그 그림은 살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 큰 그림을 항공편으로 도로 한국으로 가져가
는 것도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내가 그 좋은 그림을 마지못해 아주 좋은 값으로 떠맡아 오늘까지 소장하고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이퇴계의 도산서원을 실물처럼 섬세하게 그린 그림이다.한 번은 그와 같이 전라북도에 있는 내장산 호텔엘 가니까 그와 똑같은 크기의 그 그림이 넓은 벽에 높이 걸려있는 걸 봤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과연 잘 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그런 좋은 그림이다.

한번은 그만 팔까도 생각했었는데 그러면 그것을 보며 성장한 우리 아들 딸들이 너무 섭섭해 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그 그림을 항상 바라보며 자란 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나 같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어디엔가 깊숙히 넣어두었던 그 당시의 전시 카탈록을 찾았다. 그것으로 우리 집안 카드(Family Card)를 만들려는 것이다. 카드 앞장에 그 그림을 넣고 그 카드를 접은 그 안쪽의 양면은 빈 공간으로 남겨놓은 카드를 5,000~ 10,000장 쯤 인쇄하여 뒀다가 우리 가족들이 카드가 필요할 때마다 그것만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연하장, 크리스마스 카드, 생일축하 카드, 결혼축하 카드, 병문안이나 기타 위로카드, 심지어는 우리 아이들의 결혼 청첩장에도 그 그림을 넣을까 생각한다.

다음부터 우리 가족들은 카드 사러 갈 필요가 없고, 어떤 카드를 골라 살까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또 그 카드를 받는 사람들이 겉장만 봐도 우리 집에서 온 것인줄 즉각 알게 될 것이다.

다음 달 서울 가면 인쇄소에 주문하려고 Zip Drive에 그 그림을 잘 스캔해서 넣었다. 내년부터 우리 가족은 카드를 사는 것으로부터 완전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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