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그의 글과 말은 샘물처럼 맑았다

2004-11-20 (토)
크게 작게
김명욱(목회학박사)

10여 년 전 고등학교 때 친구였던 목사가 갑자기 변을 당해 유명을 달리한 적이 있다. 뚱뚱하고 덩치가 커다란 그 친구는 체구가 200파운드가 넘게 나갔다. 그의 나이 40대 초였다. 한국에서 목회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공중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사우나를 하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회생(回生)하지 못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효자였다. 가난했던 그의 부모들에게 성심을 다해 효도하는 그 집안의 장자였다. 그 밑으로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부모와 여동생에게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간 그는 나중 목사가 된 후 서울 근교의 한 교회에서만 19년째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또 한 사람의 신학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목사가 된 후 미국에 들어와 공부를 계속해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나와는 같은 미국신학교의 동문이 된다. 신학교 때 단짝이 된 그 두 사람은 신학교 졸업 후에도 서울이면 서울, 미국이면 미국에서 만나 서로의 회포를 풀며 그렇게 친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그 친구가 유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을 접한 미국의 친구 목사는 밥도 먹지 못하고 여러 개월 동안 방황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나와 뚱뚱한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헤어진 후 서로 소식을 모르고 지났지만 이 친구와는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신학교 4년, 전도사 시절, 목사가 된 후에도 계속해 연락하며 서로 의지하던 친구관계였기에 그럴 것이다. 그
친구가 살았다면 감독은 되었을 게다.

지난 13일 또 한 사람의 40대 젊은 목사가 한국에서 유명을 달리 했다. 온양에서 목회 하던 채희동 목사. 41세다. 그는 13일 오후 7시경 성가경연대회의 심사를 보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집을 나와 가던 중 반대편에서 오던 유조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채 목사의 차를 들이받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를 아끼고 사랑하던 선배 목사를 지난 14일 만나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고 인터넷에 떠오른 그의 마지막이 된 설교를 보고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영성(靈聖)·생명(生命) 잡지인 <하나님·사람·자연이 숨쉬는 샘>을 편집 발행해왔었고 그의 저서로는 <민중·성령·생명·죽재 서남동의 생애와 사상> <교회가 주는 물은 맑습니까> <걸레질하는 예수>등이 있다. 그 외에도 그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다.

또 채 목사는 지난 3일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으로 선임돼 그의 활약이 기대됐었다. 그를 아끼는 선배 목사는 “그의 글과 말은 샘물처럼 맑았다”고. 최근 한국의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이 된 신경하 목사는 “지난날 생명 운동을 펼친 당신을 마음껏 돕지 못하고 후원하지 못했음을 용서해 달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고 또 한 목사는 “큰 별이 졌
다”고 했으며 영국에 있는 목사는 “꾸밈없이 목회하는 친구 한 사람을 먼저 보내니 아쉽기 그지없다. 모든 짐 내려놓고 훨훨 사뿐히 가시게나”라고 그의 감을 통탄해 했다.

인터넷에 떠 오른 그의 마지막이 된 최근에 한 설교 제목은 <포장된 예수, 교회 안에 ‘가득’>이다. 부제로는 ‘삶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예수...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개혁의 대상’이다. 로마서 10장 9-13절과 야고보 2장 14-26절을 근거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현재의 교회를 비교해 엮은 그의 설교를 일부분 인용해본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미완의 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은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종교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그것은 마치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당시의 교회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중략>


거둔 헌금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데 쓰지 않고 중세 기독교회처럼 교회를 살찌우는데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교회는 엄청난 부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되었으며, 국가권력도 어찌할 수 없는 지역에 이루고야 말았다”고.

채 목사는 아내와 여섯 살 난 아들 윤기, 세 살박이 딸 율미를 세상에 남겨 둔채 홀로 떠났다. 그런데 그의 친구 목사가 그의 죽음을 보고 남긴 말 “하나님은 흠 없는 자를 제물로 받으신다는 의미를 깨닫게 한다”는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될까. 하늘은 알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