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천사는 생존한다

2004-11-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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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수(취재1부 부장대우)

몇년 전 봄 아이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갔을 때 남몰래 선행을 하는 중년의 한인 여성을 보며 천사를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갑자기 다리를 아파하는 아이를 업고 플러싱병원 응급실을 갔었다.
말이 응급실이지 실 것에 들려 들어오지 않는 한 3~4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통증을 어떻게 하면 줄여줄 수 있는지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렸었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됐는데 어디서 나타난 중년의 한인 여성이 노인 혈압이 높다며 양보해달라고 했다.노인이 안쓰러워하는 모습에 먼저 들어가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통역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상태가 양호하다고 말했고 중년의 여성은 그 말에 미안해하며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데 혈압이 오르자 마음이 조급해서 한시라도 빨리 진찰을 받아보고 싶어 하셨다며 먼저 진찰을 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하늘색 양장의 말끔한 옷차림과 차분한 말투의 그 중년 여성을 보며 노인을 데리고 병원에 온 것이 한번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교회의 집사로 혼자사시는 노인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위로하고 아픈 곳은 없는지 돌보고 있다는 활동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떠나는 뒷모습이 빛을 받아 마치 천사가 나가는 것 같았다.

연말을 맞아 한인 사회 곳곳에서 선행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중년 여성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하는 일이 작은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노력과 수고는 찬란한 햇빛만큼이나 외로운 이들에게 따뜻한 빛이 되고 있다.

많은 한인 단체들이 홈레스들을 찾아가 식사를 대접하고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또 외로운 노인들을 위로하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남몰래 선물을 보낸다.이들을 보면서 천사란 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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