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처음으로 돌아가자

2004-11-16 (화)
크게 작게
정춘석(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봄은 땅에서부터 오고 가을은 하늘에서부터 온다는 말이 있다.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처음 마음 가지고 끝까지 지켜 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얼마나 열정적이고 따스했는가? 서서히 시절에 따라 물들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수많은 변화를 찾아보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음을 본다.선서했던 마음과 서약했던 마음들로 지금도 계속 살아간다면...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생애를 바치겠다고 열심히 공부했던 수많은 법조인과 정치인들, 병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하여 생애를 바치겠다고 선서했던 많은 의료진들, 이름 없이, 빛 없이 감사하며 섬기겠다던 목회자들... 어느 사이엔가 부자의 편에서, 힘 있는 자의 편에서, 약하고 힘 없는 자들을 더욱 울리는 자가 되고 있음을 본다.

물론 처음 마음을 가지고 생애를 바친 분들이 더욱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이 보기에는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했기에 본전을 뽑아야 하는 것일까? 돈과 관계되어지고 힘과 관계되어지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곳에 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 편이 더욱 익숙해져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좀 이상해 보이는 삶의 방식에 스스로 놀라면서도 쉽게 처음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얼마 전에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책을 읽은 기억들이 있다. 몰라서 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결단하지 않았고 애써 외면해 오면서 살아온 까닭이다.

전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물로 6장의 용지를 사용하여 과제물을 제출케 하였다. 과제물을 받으면서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었는데 한 학생은 앞뒤 겉표지를 합하여 6장을 내었고, 다른 학생은 내용만 6장을 내었다. 모두 6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받는 자는 다른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 다를 수는 있다. 문제는 성실함과 정직함이 계속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서서히 물들어가듯, 다 그러니까 나도 별 수 없다고 자위하지 말고 뜻을 정했으면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에게 흠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늘 하던대로 창문을 열고 기도를 했다. 결국 그는 왕이 바뀌어도 계속하여 자기의 자리에서 봉사하는 자가 되었다.

이제라도 우리는 처음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시작할 때와 끝이 너무 다를 때 사람들은 답답해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은 ‘서서히’라는 기차를 타고 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 서서히가 더 이상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리로 몰아간다면 차라리 뛰어내려라.

교회가 교회다워야 아름답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향기가 난다. 온갖 것으로 치장하고 변장하였어도 밝혀지는 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늘 변화를 꿈꾸지만 사소한 무관심,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이따금 불협화음을 연주하게 된다. 우리가 소중하게 떠올렸던 그 마음, 그들로 인해 잠시나마 가졌던 그 마음, 손을 들고 선서했던 그 마음, 가락지를 끼며 내어맡겼던 그 마음, 머리를 내어밀고 처분대로 하소서 했던 그 마음, 그 마음을 가졌었던 때를 떠올리며 엷은 미소를 짓는 자신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의 환희와 기쁨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살아가면서 서로의 관계가 어색하고 불편할 때나 힘이 들 때면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면 회복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