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컴센터 모금 음악회를 보고

2004-11-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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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희(시인)

색체의 정조가 고요히 우리의 가슴을 젖어드는 가을이 익어가는 그 날 밤, 그 아름다운 음악회는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뉴욕한인 커뮤니티센터 기금모금 음악회.

이 자리에는 어른들과 TKC 어린이합창단을 비롯, 관계자들이 벌써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음악회장을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모임의 성격이 그토록 고귀하고 중요한 만큼 음악회의 순서도 골고루 잡혀져 있고 특히 TKC 합창단 어린이들의 우리말 고전 노래는 더욱 가
슴을 뭉클하게 해 주었다.


이 훌륭한 음악회에 예상보다 한인은 차고 넘치지 않았다. 만일 중국 커뮤니티에 이런 모임이 있었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이 자리가 만석 이상이었을 거라고.

언제 들어도 싫지 않은 우리 가곡 음악의 밤, 나는 이날 음악회를 보면서 20년 전 다민족 커뮤니티 모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보란듯이 당당히 자기들의 요구를 내걸고 위력을 자랑하던 그들을 보면서 이런 행사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게 나는 일찍부터
안타깝게 손들어 버리고 만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땐 열심히 이런 모임이나 행사에 다녔었다.

나만이라도 나타나 한국사람들이 여기 있다고, 한국사람의 얼굴을 잊지 말라고, 그러나 이제 다행하게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우리 교포사회, 오늘 우리 교포사회의 눈부신 발전, 우리 1세, 2세들의 문화얼반과 최근들어 이 땅에서의 우리 정치권 전반의 판도와 힘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는 우리의 영향력에 비해 아직도 교포 안의 공동체 의식의 구멍 뚫린 곳곳들, 이것은 나만의 잘못된 생각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 정도 쯤이야, 하고 안이할 수 있지 않느냐고도 할 수 있을런지 모른다.

진정한 문화와 공동체의 정신력은 내부의 건강한 뿌리가 있을 때 가능하다. 내부로부터의 사심 없는 결속과 상호 신뢰와 협동에서만이 건강한 커뮤니티 성숙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그날 밤의 음악회로 돌아가 생각해 본다. 물론 나는 주최측의 한 사람도, 커뮤니티센터 건립을 위해 얼마라도 기부를 한 사람도 아직 못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신문 사회면에 보이는 커뮤니티센터에 관한 그 어떤 소식도 놓치지 않고 읽고 있다. 우리를 앞서 우리를 위
해 꿈꾸고 개인의 사재, 시간과 생활을 희생하는 그들에게 진정한 경의와 격려를 깊이 보내고 있다.

그만큼 커뮤니티센터는 우리들의 자존심이며 우리 교포사회 전체의 현재와 미래, 우리 사회 공동의 힘과 발전을 위한 아름다운 상징물 이상임을 아무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있었거나 없었다는 이유로 관심도를 재는 것은 아니다. 모처럼의 그 모임에 이날
참석자 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였더라면 얼마나 훈훈한 커뮤니티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을까 하고 아쉬움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의 일로 지금 이렇게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힘들다. 나 개인과 내 가족의 생존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허가증도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해 다른 일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고 얼마나 열심히 다민족사회에 우리들의 얼굴을 빛내기 위해 힘써왔는가. 우리 민족의 미덕은 나라가 풍전등화일 때, 국민의 어느 지체가 힘들어 할 때, 나라와 민족, 이웃을 위해 충정스럽고 아름답게 결속하는 민족이다.

지금 나는 우리의 조국과 우리 교포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언가 한 번 생각해 본다. 이제는 부정과 해체를 위한 단결이나 참여가 아니고 무엇을 위한, 우리의 미래와 아름다운 꿈의 건축을 위한, 참여와 결속이라는 그 금쪽같은 사실을 또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의 신실한 충정이 함께 모이면 우리의 센터는 멀지 않을 것이고, 그 때, 그 곳에서 우리의 젊은이들, 우리의 장정들, 우리의 노년들, 우리의 어린이들이 함께 꿈꾸며 함께 즐겁게 오늘과 내일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쌓아가리라, 그리고 향수에 젖어 외롭고 쓸쓸한
어느 날, 나도 그 곳에서 티 잔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친구와 마주앉아 활짝 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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