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한 러시아계 부자가 주는 교훈

2004-11-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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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베어마운틴으로 놀러 갔던 한 한인일행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이들은 모처럼 단풍놀이 겸 바비큐를 하기 위해 이날 산을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고기를 굽는데 필요한 차콜을 그만 깜박 잊고 챙겨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옆에 바비큐를 하고 있는 한 러시아계 가족에게 다가가 “차콜을 좀 얻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버지와 한 열 살 쯤
돼 보이는 아들이 직접 남아있는 차콜을 가지고 와서 불까지 피워주고 가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10분쯤 후에 또 그 아이가 와서 “뭐 또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물으면서 불이 잘 타도록 부채질까지 해주고 불이 잘 붙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런 도움을 생각지도 않게 받은 이 일행은 하도 고마워서 고기를 맛있게 구워 한 접시 담아 “한국 고기 맛 좀 보라”며 그들에게 갖다 주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또 그 아이가
“러시아 빵을 먹어 보라”며 말랑말랑한 솜사탕과 함께 빵을 한 접시 주고 가더라고 한다.


그 바람에 이날 이 일행은 고기도 맛있게 구워먹고 덕분에 타민족의 빵 맛도 보고 이래저래 기분 좋게 단풍놀이를 아주 잘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들이 전해주는 이날의 광경은 민족과 민족간에 이루어진 나눔의 정신으로 비록 적은 것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특히 다시 찾아와 불이 잘 붙었나 확인하러온 이 어린아이의 따뜻한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 이 일행은 너무나 감동 받아 이민생활에 상처받고 힘들었던 마음을 마치 치유해주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민족과 민족 사이에 이루어진 인정과 베품, 나눔의 사랑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 부자父子)를 목회자로, 일행을 일반 성도로 한번 다른 각도로 생각해 봐도 얻을 교훈이 적지 않다.

오늘날 이민교회는 일부이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교인들 중에는 교회를 안 다닐 때보다 다니면서 상처를 더 많이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 한인들은 상당수가 힘든 이민생활에서 상처를 치유 받고 고통을 위로 받기 위해 교회를 찾고 있다. 그러나 제보에 의하면 오히려 교회를 다니면서 상처를 더 많이 받고 있는 한인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 것은 왜 일까.

이민 생활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저런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으며 여러가지 가정문제도 있게 마련이다. 지병이나 경제적 문제들도 피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생활이 힘들 때가 많다. 그런데 목회자 가운데 일부인 사이비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아픈 상처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기는커녕, 오히려 심적 고통과 상처를 주고 있다. 이들은 사랑이 본체인 교회에서 오히려 반목을 조장하고 성도와 성도들간에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교회방향도 주로 약자나 병든 자를 보듬어주기 보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갖고 그들 위주의 운영을 하고 있지 않나하는 의구심을 사기도 한다. 물론, 지금도 한인교계는 좋은 일을 남몰래 하거나 자신이 평생동안 일군 교회의 기득권을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는 모범적
인 사역자가 더 많다.

그러나 자기의 왕국건설에만 치중, 위로 받고자 모여든 성도들을 더 힘들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하는 사이비 목회자들이 문제이다. 이들은 힘에 부치도록 일해 교인이 어렵게 낸 헌금을 재정보고도 않고 자신의 힘이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건축을 서두르고 헌금을 강요해 성도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또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면 아무리 봉사하고 희생한 자라도
가차없이 ‘치리’하겠다고 위협조의 말을 한다. 그리고는 이 기회에 무슨 직분이라도 하나 딸까 아부하는 한심한 성도들의 마음을 악용, 자신의 편을 만들어 반기를 들고나선 자를 고립시킨다.

이런 일부 사이비 목회자들로 인해 그 교회는 지금 내부에 분란이 일어나고 교인간에 서로 반목하고 불화가 조성돼 교회의 본질인 사랑은 어디론지 사라졌다. 때문에 이런 교회 성도들은 오히려 상처만 받고 믿음과는 점점 거리가 먼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즈음 한 러시아계 부자가 한인에게 베푼 조그마한 이웃사랑은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고 잘못된 길을 가
고 있는 일부 사이비 목회자들에게 회개의 좋은 각성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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