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범사에 감사하며

2004-11-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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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화(롱아일랜드)

절기상 풍요롭고 좋은 의미를 지닌 명절, 추수감사절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미국에 살게 된 후로 고수하는 원칙이 하나 있는데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칠면조를 직접 굽는 것이다. 초대받아 가는 것 보다 내 마음이 가일층 넉넉해지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할인 쿠폰을 오려가며 며칠 전부터 장을 본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쌀쌀해도 개의치 않는다. 큼직한 칠면조를 구우면 집안은 온기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대청소를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힌다.


예년에 비하면 엄청 나빠진 경기 탓에 힘들게 꾸려 나가지만 비껴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인다.신은 공평하게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땐 항상 우리에게 물질 대신 시간을 주시기에 아이들에게 투자를 한다. 어떤 의미에선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이다. 바쁠 때 미뤄두었던 자질구레한 얘기까지도 함께 하며 많이 웃고 많이 다닌다.

집에서 자동차로 10분 이내면 대형 서점이 있다. 아이들은 코코아를, 난 카푸치노를 앞에 놓고 각자 읽고 싶은 책들을 읽는다. 두 세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좋은 곳이다.많은 돈이 필요 없다.

문제는 마음이다.미국의 사회구조상 대학을 가는 스물 안팎이면 거의 모두가 집을 떠난다. 그 전까지는 돈 버는 일은 보류할 참이다. 많이 부비면서 추억을 쌓고 싶기 때문이다.

먹고 살만 하니 그러겠지 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개인적으로 살아가면서 설정한 우선순위가 다를 뿐인데 구태여 아니라고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각자 나름대로 소신껏 살면 된다. 부모 노릇 할 수 있는 건강 있음에 감사하고 심신이 건강한 좋은 자식들 있음에 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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