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에 이런 明地가 있다니...

2004-11-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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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높으면 춥고 낮으면 더울텐데, 그걸 예전부터 알았는지 아주 알맞은 높이에다 산도 좋고 산 사이에는 곱게곱게 빗질한 삼단머리 가름마처럼 골짜기도 예쁘게 갈라놓았다.

코스모스가 양쪽으로 즐비한 한적한 가을길을 가다 보니 들판도 알맞게 퍼질러 놓았다. 전라북도 진안군, 아!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진안군에 내리는 햇볕을 보니 굳은살이 없는 통통한 처녀의 손바닥 살이었다. 만져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청정지역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흔하디 흔한 한국의 일반적인 청정지역이 아니다. 청기청지(靑氣靑地), 청수청인(靑水靑人)이라고 하면 엇비슷 어울릴
까. 맑지 않은 곳이 없다.


정치가 사나운 한국에서 민선으로 세 번씩이나 군수로 추대를 받은 임수진(林守鎭) 군수의 얼굴과 그 눈동자가 또한 맑다. 그의 이름을 보니 진안을 지키는 수진이다. 그래! 맞다! 업무 수행에서 다친 허리를 보조기에 의지하면서도 마음껏 웃으면서 진안군을 휘감는 여유,
아! 이런 사람이 아직도 한국에 있구나!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금척을 받아들고 이씨조선의 창업을 계시 받았다는 마이산 절경, 임금이 앉아있는 용상 뒤의 일원곤륜도 그림이 이 마이산이니 조선왕조의 설화를 탄생시킨 연유에서일 것이다.
마이산의 두 석봉은 말 그대로 말귀를 닮았다. 멀리 말귀를 바라보고 바람이 늘면서 하늘 가듯, 산을 끼고 이리저리 허리를 들면 푸르기를 원하다가 이제는 지쳐 누운 용담호가 나온다. 푸르다 못해 차라리 목이 쉬어 튕겨져 나오는 육자배기 소리와 같다.

왜 그럴까? 동국여지승람에 “용담의 백성은 소박하고 꾸밈이 적다”라고 기록이 될 정도로 순박하고 인심이 따뜻한 백성이다. 그런 사람들이 용담호 건설로 마을이 수장되면서 몇 채의 주민만이 근처로 이주했을 뿐, 거의 모두가 대대로 살아온 살림살이 가볍게 봇짐으로 싸들고 산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그 수가 자그만치 만여명, 그러니 용담호의 물결 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윤창을 기본으로 하는 서러운 육자배기일 수 밖에.

맑으면 수심도 보이고 애수도 보인다. 웃음이 가득한 임수진 군수의 얼굴에는 다득여주고 싶은 애수가 서려 있다. 그가 잊지 못하는 이향민 때문인가 보다.

관광이 사람의 휴식이며, 또한 역사의 흔적을 아련한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면 생산물은 생활의 근본이며 그 고장의 생명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금산 인삼에 덧보태어 팔려나가는 진심인삼은 우리나라 인삼 중에 사포닌이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는 최상의 인삼이다.
육류로는 진안 돼지, 오염 없는 환경에서 키우는 진안 돼지는 열량이 낮아 비만을 방지하고 뇌에 좋다는 DHA와 EPA 함량이 전국에서 최고로 높다. 글쎄, 덕을 더하기에 더덕이라 했던가.

명산에서 자생하는 더덕은 그 품질에서 차라리 사삼이란 명성을 얻을만치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어 해독하거나 간장 보호에 쓰인다고 한다.

마이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천지탑과 석탑이 진안군을 위해서 끊임없이 무슨 염원을 하고 있는지를 진안군에서 나오는 특산물을 대하면 알 수 있다. 고드름이 거꾸로 솟으며 어는 신토(神土)의 마이산 주변, 모여서 흐르던 강길이 되지만 섬진강의 발원이 선각산 돌데미
한샘에서 시작을 하니 하늘에서 내리는 말씀이 “되거라, 흐르면서 아주 잘 되거라” 하는 듯 하다.

한국은 지금 현대화 바람에 모든 것을 찢는다. 역사도 찢고 인성도 찢고 마을도, 마음도 찢는다. 현대화만이 발전이 아니다. 지키는 것은 파괴 앞에 지극한 발전인 것이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시골길을 빚을 내어 고속도로로 만드는 정부의 저의, 그만하면 됐다는 교훈을 진안 군수에게서 배워야 한다. 한국이 동양의 진주라면 진안은 한국의 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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