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래방 문화

2004-11-02 (화)
크게 작게
강현우(소설가)

이민을 실현시킨 사람들은 학력이 높거나 낮거나, 부자든 가난하든, 국제결혼 케이스든 아니든 간에 한국에 있으면서 조건만 좋았다면 모두 용(龍)이 되었을 사람들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이들 중에 노래방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라면 삶의 굴곡을 미소로 건너려는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진 자라고 보고 싶다. 미국이라는 뗏목에 태워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뱃길을 나선, 이런 삶의 형태를 따르노라면 때로는 비참하고, 참담하고, 피폐한 껍질임을 마디마다 느끼지만 산다는 것은 어디에서 살든 소망과 기대감으로 버티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들 때 여럿이 어울린 속에서 어려운 순간과 상황을 삼켜버리고 시치미 떼는, 그들을 나는 진정 사랑한다.


취미생활의 정수를 맛보거나 여행을 가거나 갤러리 혹은 음악회에서 미국 주류들의 느끼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도 만만한 방법은 아니므로 지인들과 골프를 친 뒤에나 모임에서 식사를 마친 후, 한잔 마시고 노래방을 찾는 것도 절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 만큼은 열창을 통한 치유로 내일도 잊고 자신의 처지도 잊고 오직 감성의 별빛이 되어 하나씩 울음에 젖은 가사를 토해내면, 거기다가 부르는 자가 노래에 감정이라도 발라서 감칠맛 있게 불러제끼기라도 하면 듣는 자도 그 노래를 따라 멀리 음색에 포부를 싣고 솟구치게 된다. 그러다 내려올 때는 스트레스라는 걸 숨으로 죽여 같이 잦아지
게 하는, 이른바 노래방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로 그들의 노래는 일기장 갈피에서 신음해도 좋을 긴 한숨들과 눌러야 할 사연들을 음률에 싣고 좁은 공간을 별처럼 떠다니기도 한다. 그 별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의 과거와 내면을 엿볼 때면 물밀듯 터지려는 자기 토로의 본능에 안스러움을 공감케 하는 ‘동질 공간에서의 동질 감정’의 위대함 마저 발견할 때도 있다.

어쨌든 노래방 가수들은 지난 시간과 그 노래에 깃든 아쉬움을 목청껏 해소시키면서 먼 시절, 추억의 목소리를 찾기도 하고, 자기를 인식하게 하는 철학을 얻어가기도 한다. 또한 감성의 바다인 노래방에서 낚시하듯 그 날의 주제에 합당한 음정이라도 건져올리면 그 시간은 살 맛이 나지 않겠는가.
웬만하게 사는 집마다 훼밀리룸에 노래방 시설들을 잘 꾸며놓고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뼈
가 빠지게 일을 해도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켰다는 자기 확신이 없으므로 차라리 목구멍
깊숙히 신음하는 그것들을 토해내고 싶어 설치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래는 혼자 부르는 것 보다 흥이 있어야 재미가 있고, 이상하게도 돈을 내고 불러야 재미가 있고, 여럿이 귀를 기울여주는 가운데 불러야 재미가 있기 때문에 노래방 예절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노래방에 와서 마이크를 잡고 찬송가를 너댓 곡씩 부르는 것은 정서에 조금 맞지 않은 행위인 것 같고, 남이 노래하고 있는데 옆 사람과 큰 소리로 사상(思想)을 논하는 것도 매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같이 사용한 노래방 비용도 추렴해서 지불하는 것도 미덕이고, 노래를 못한다는 유세(?)로 몸을 배배 꼬다가 어쩌다 청한 곡이 선수들도 부르기 어려운 곡을 신청하는 사람을 보면 겁이 나기도 한다.

사실, 노래방은 마음을 열고 화합하기 위해서 찾는 곳이다. 노래를 잘못 불러도 큰 흉은 없다. 노래방기계 점수에 매달리다 보면 재미도 없고 타인과의 비교나 경쟁심 유발은 더더욱 흥을 깬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그 순간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돈독한 정(情)을 쌓는 것이다. 그 정은 해묵은 오해들도 녹여 없애주는 다사로움과 아껴주고 싶은 마음을 불
러 일으키는 요인이 될테니까 말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