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미국의 새 대통령에 바란다

2004-11-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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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주말에 한국의 가정폭력 실상을 조명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TV 프로를 보게 되었다.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남편이 아내를 너무 때려 그의 부인이 잘못하면 언젠가는 남편에게 맞아죽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남편을 죽인 사건이다. 또 하나는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때리는 아버지를 보다 못해 딸이 아버지를 죽인 실화를 내용으로 한 방송이다.

전자의 경우 매맞은 부인이 사건 당일 술에 취해 자는 남편을 반격, 발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고 칼로 남편을 찔러 죽였다. 후자는 아버지가 술을 먹고 들어와 칼로 가족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딸이 고추가루를 아버지의 눈에 뿌렸다.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들고 있던 칼을 놓치자 남편이 딸을 더 이상 괴롭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어머니가 남편을 죽인 것이다.


이런 끔찍한 가정폭력의 결과는 이곳 한인사회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서 왔다고는 하지만 많은 가정이 비참하게 살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그래서 결국 이 나라는 이민자가 주인이고 또 그들에 의해 발전해왔고 나라가 부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인사회를 보게 되면 우리 같은 이민자가 주인이라기 보다는 늘 곁다리 신세이다. 그러고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서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 문제는 힘없는 이민자들에게는 점점 더 어려운 이슈가 되고 있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가정폭력도 이렇게 까지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활고를 해결하려다 보니 우리의 입장에선 일자리가 남자쪽 일이 여자쪽 보다 많지 않다. 남자들이 당당하게 일을 갖고 싶은데 그나마 있는 곳이 대부분 자격미달인데다 나이 때문에도 안되고 거기다가 신분문제까지 겹쳐 안되고 하다보니 자연히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가정의 경제권이 자연 일이 더 많은 아내한테로 넘어가게 된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더 많은 짐을 지게 되고 또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해진다.

그런데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마땅하게 없다 보니 집에 오면 자연 짜증을 낼 수밖에 없고 자신의 고생이 모두 남편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런 여자들의 고충을 형편이 좋지 않은 남자들이 이해할 리 만무다. 처음엔 가볍게 티격태격하다 심한 말이 오가고 마침내는 자존심 세우기에 유독 강한 한국 남자들이 ‘욱’하는 성질에 주먹질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악순환되다 보면 결국 사람까지 죽이는 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이번에 당선되는 미국의 새 대통령은 이민자들의 현실적 고충을 깊이 이해하고 진실로 이민자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펼쳐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된다.

이번에 치러졌던 선거전에서 보게되면 양 후보 모두 화려한 미래, 발전하는 미래에 관한 여러 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따지고 보면 모두 우리같이 먹고살기 힘든 이민자 들에게는 머나먼 보랏빛 꿈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멀리 있는 이런 꿈보다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경제회복에 대한 체감이 더 필요하다.


일을 자유로 하고 살 수 있는 합법적 체류문제가 우선이고 나아가서는 아이들 교육문제, 의료보험 같은 복지 문제 등을 실질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넓게는 국내의 안전과 치안문제, 그리고 대 테러정책 등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인류복지와 평화를 위해, 그리고 비핵문제 평화적 해결 같은 시급한 문제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우선 이 땅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길을 정책적으로 열어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

힘없는 이민자들이 이 땅에서 살려면 우선 무엇보다도 신분문제가 해결돼야 집안의 가장인 남자들이 일할 기회도 많아져 가정의 평화가 보장되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이민 올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안고 왔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이루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심지어 합법적인 신분의 사람조차...

그런데 하물며 그 수많은 불법체류자의 생활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번에 당선된 미국의 새 대통령에게 바람이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서민들의 밑바닥까지 챙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져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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