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소년 고교 백일장에 다녀와서

2004-11-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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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수필가)

한국의 반대편인 뉴욕에도 어김없이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천고마비의 계절, 미동부 문인협회에서는 5년 전부터 실시하는 고교 백일장에 베이사이드, 후랜시스루이스, 플러싱 고등학교에 다녀 왔다.

한국도 아닌 미국땅에서 그것도 한국어 백일장이라니,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어처구니 없는 시간 낭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작은 몸부림이 자신을 살리고 어려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숨통 트이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으리라.그러나 문학이나 예술이 먹고 사는 생존 이외에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는 사실을 적어도 내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수많은 인종 속에 초롱초롱 빛나는 우리 아이들의 눈동자만 보아도 가슴 설레이는 마음은 지나친 나의 감성일까!아이들이 무언가 우리 글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는 기특함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고, 그래서 마음같아선 모두 당선으로 뽑아주고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정교한 글체에 풍성한 마음까지 곁들였으니 어찌 이 가을에 거둬들이는 오곡백과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했다.

그렇게 나무와 비밀의 대한 수필 또는 시를 쓰는 아이들을 보며 언젠가 우리 가족이 시민권을 받으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병원에 가면 환자 투성이라고 시민권을 받을 때도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 중에서 어느 나라인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판사가 자기 나라 사람인 듯 온 가족을 일으켜 세우더니 비록 시민권을 받았지만 아이들에게 언어는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나서 저렇게까지야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사회에 나가고 나서 당장 그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긴 자기 나라 언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를 이해할 수가 있느냐는 심사위원의 말도 그렇지만 실지로 내 이웃에 사는 이탈리아인이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위해 이태리 말이 필수적이라는 말의 뜻은 참다운 진리임을 살아갈수록 새록새록 느낄 수가 있었다.

이번 고교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이나 그렇지 않은 한국 학생들도 지금은 비록 한국어도 아닌 영어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고생하지만 언젠가는 백일장의 제목처럼 옮겨 심은 나무들이 땅갈이, 물갈이로 심한 몸살을 하다가 어느 날 두 팔을 번쩍 들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소리를 외칠 비밀이 가슴 깊이 꽁꽁 숨겨져 있음을 나는 확인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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