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주의 하려면 재갈을 버려라

2004-10-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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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리버티뱅크)

“전하! 신 영의정 아뢰오. C모씨는 전비를 뉘우치는 듯 하니 곤장으로 다스린 뒤 제주도로 귀양 보내고 J와 D 모씨는 사직을 능멸한 대역 죄인들이오니 극형에 처하심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일전 이해찬 총리가 뒤풀이 술상머리에서 이와 뜻이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오백유여년 전 수양대군과 결탁해서 단종을 몰아내고 “천하가 이 손 안에 있오이다”고 한 한명회의 환생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노무현 정권이 천지가 개벽될 만큼 크고 어려운 일들을 턱 밑에 두고 오로지 밉보인 언론을 죽이지 못해 절치부심하는 것을 보면 가련하고 측은해서 견딜 수가 없다. 자기들은 아주 잘 하고 있는데 일부 언론들이 잘못해서 국민들이 오해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미운 X들을 응징해야겠는데 핑계는 언론이 유신시절 권력에 빌붙어 못된 짓을 했으니 차라리 군부 독재는 봐줄 수 있어도 언론의 변절과 비행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서울에만도 유수한 신문들이 여러 개 있었고 수많은 기자들은 테러와 구속으로 취재는 커녕 생명의 위협 속에 치를 떨었다. 특히 반골이 강했던 천주교 계열의 신문은 강매 처분까지 당해 어용신문이 되었다. 생사가 결부된 폭압정치 하에서 언론 모두가 피해자들인데 잘, 잘못의 경중을 따져서 어쩌자는 것인가.

독자인 우리는 그들의 과오를 두둔할 생각도 없고 잘못을 고치는 것도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입바른 소리 잘 하는 신문이라고 못된 계모 전실 자식 대하듯 하는 것은 노정권 특유의 소아병적 피해망상이다.

저 옛날 임금의 진노에도 불구하고 사생결단으로 바른말 하는 사간원 관리들을 포용하는 것은 왕의 의무이자 아량이었다. 일제에 의해 폐간되었던 신문들을 비롯해서 광복 직후 각지에 수십 개의 신문이 창간되어 좌파 우파로 또는 친탁 반탁으로 노선이 갈리어 필봉을 휘둘렀지만 많은 신문들이 자,타율적으로 휴,폐간 되었고 기타 유수한 일간지들도 우여곡절을 겪어오다가 박 정권 폭압 하에서 모두 백기를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박 정권을 자승자박한 유신 시절 긴급조치 제 9호는 박 정권의 단말마적 포고령이었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어떤 신문은 공동으로 민주, 민족선언문까지 발표하면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시밭길을 헤치며 여기까지 왔다.

이래도 저래도 안되니 열린우리당이 언론관계법 개정안으로 족쇄를 채우고 공정거래법이라는 해괴한 산술법으로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을 보면 국민들이 어느 신문이 바른 말 하는지 그른 말 하는지도 구분 못하는 팔푼이들로 보이는 모양이다. 어느 신문을 읽든 갑순이 좋아하는 갑돌이 마음인데 왜 정부가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 말이다.

비근한 예가 될 지 모르겠다. 시중에 인기 최고인 라면회사 3개사의 밀가루 소비량이 60퍼센트를 넘게 되면 법에 저촉될까 겁이 나서 직원들 총 동원시켜 시장 길목 지키고 서서 제발 라면 그만 드시고 칼국수나 수제비 또는 밀가루죽이라도 잡수시라고 사정을 해야 할 판이니 무슨 이런 자본주의 국가가 있는가 말이다.

국가의 최고위층들이 막말을 하고도 끄떡없는 나라, 그러고도 오히려 더 기고만장해 하는 나라, “까불지 마라”라는 말 뒤에 무슨 말이 덮혀 있었을까. 아무리 취중에 쏟은 말이지만 백성 알기를 홍어X으로 알지 않았다면 술 취해 죽은 이태백의 혼백에게라도 물어보라.신문도 맘대로 보기 힘든 세상 되는가 모르겠다. 라면 잡수시는 저 입이나 수제비 먹는 이 주둥이나 딱하기는 매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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