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의 상처 속에서도

2004-04-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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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거의가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마시는 커피, 아침을 흠뻑 적시는 그 커피의 향 보다도 나그네의 봄은 향이 진하다. 외로운 향이다. 이름으로 하나인 봄에, 산에는 만가지로 이름이 다른 초목들이 새싹으로 기쁜 얼굴을 내어밀지만 이역의 우리에게는 단 한가지의 기쁜 소식이 없으니 봄이 와도 그저 외롭다 할 뿐이다.

이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나그네란 심정 때문이다. 봄기운에 들뜬 마음을 쓰다듬으며 봄바람을 만져보지만 친하게 보던 서울의 봄은 아니다. 그러니 기껏해야 워싱턴의 벚꽃구경 나들이로 봄 하나를 쓸쓸한 잔치상에 올려 놓는다. 마음이 아주 여리고 고운 여인의 입술처럼 가늘게 떨며 도시의 긴장 앞에 피어있는 벚꽃의 꽃잎파리를 보고 있으면 신선하게 들떠가던 기분이 다 사라지고 쓸쓸해 진다.


왜 화려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면 안될까? 꽃의 숙명이라고 그렇게만 여기고 지나치면 될까? 동네를 지나다가 보면 꽃가게가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인다. 그래, 꽃가게에서 파는 꽃은 더 아름답겠지, 고르고 잘 다듬었을테니까. 남의 집 정원에서 자라는 부들꽃은 산길에서 피는 작은 꽃 보다 주인의 눈치를 더 많이 보고 피었으니 그 꽃색깔에 울음도 감추어져 있겠지.

꽃이란 저마다의 화려한 색깔을 마음을 다하여 풍기고 있으나 그 꽃을 한참 들여다 보면 오히려 쓸쓸하다. 치렁치렁 늘어진 향도 아닌, 가냘픈 한 모금의 향기로 행인의 눈길을 끌며 겨우 겨우 유지하는 꽃들의 생명, 화려한 색깔로 얼굴을 화장하지 않으면 용도의 가치가 사라지고 팔려나가지도 않는 꽃들의 쓸쓸한 운명, 미국은 이민을 그렇게 규정을 해 놓고 웃고 있겠지.

한 동네가 지나가고 다음 동네가 다가오면 여행하는 사람들은 그 새로운 동네의 이름이나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정경 때문에 지루한 줄 모르고 오히려 기뻐한다. 사실, 생활에 새로운 생활이 없듯이 새로운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닌데도 그 앞을 스쳐가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런 맛에 여행을 가고 이민길도 가겠지.꿈 보다는 절망이, 행복 보다는 불행이, 기쁨 보다는 서글픔이 더 많이 깔려있는 이민의 동서남북 길, 어느 방향을 잡고 가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의 이민 길 사람들은 불빛 하나를 바라보고 그 길을 간다. 밤을 지새워 밤바다의 항해길을 밝히는 등대의 수고를 딛고 아침 해는 떠 오른다.

삶에서 오는 상처, 장사에서 오는 아쉬움, 노동에서 오는 고통, 절망에서 오는 고뇌들이 이민길에 많았을텐데 그런 것을 침묵 속에다 감추어두고 끊어지지 않는 끈 하나 끈질기게 잡고 가능성이란 희미한 기대 때문에 어디엔가로 꾸준히 가고 있는 사람들, 분홍의 봄이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인사도 없이 가기에 우리는 워싱턴의 벚꽃 핀 나무를 섭섭한 마음으로 찾아가는지도 모른다.

봄날 저녁에 노을이 진다. 여기 저기 노을의 조각이 흩어져 있다. 나는 그것을 발견하고 노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흐르는 강 위에 앉아 떠가는 저 노을 조각들, 하늘에만 하늘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빗물 고인 웅덩이마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조각의 하늘, 저녁 때가 되어 나타나는 노을은 이름으로는 하나이나 색깔로는 여럿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부드러운 색깔, 진분홍도 아니고 연분홍도 아닌 그 보다도 더 부드러운 색깔의 봄, 그렇기 때문에 상처가 감추어져 있는 봄에도 밤이 그 위에 앉고, 고요가 앉고, 별이 그 위에 앉는지도 모른다. 상처가 감추어져 있
어도 분홍의 봄, 우리는 쉬엄없이 이민길을 가는 순례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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