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나무가 바람을 탓하랴

2004-04-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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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부 차장)

경기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아 한인 비즈니스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인 경제의 침체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스스로 초래한 구조적 측면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선 한인 주종 비즈니스들은 10년전, 20년전과 비교할 때 새로운 아이템이 없다. 청과와 세탁, 델리, 의류, 잡화, 네일 등 뉴욕한인들의 이민 초기 주요 업종들이 지금도 여전히 주종이다.


이 업종들은 유태인이나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이민 초기에 일궈놓고 빠지면서 한인 이민자가 들어선 것이다. 한인들은 이 비즈니스들을 한 단계 성숙시켜 누가 봐도 당당한 비즈니스로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비즈니스를 토대로 새로운 도약을 이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연조가 짧은 한인 이민사회가 이 업종에서 벗어날 정도의 자산 축적이 되지 않았고 외적인 부분, 특히 9.11 사태를 맞으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됐기 때문도 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업종 전환이 별로 없다는 것은 한인들이 새로운 도전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물론 뉴욕한인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연륜이 적고 주류사회와의 교량역할을 해야하는 한인 2세들의 진출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에 다른 이민사회와 직접적인 비교를 하는 것이 무리이기는 하다.

한인 경제의 취약성이 한인 스스로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의 한인 비즈니스 성장이 자기 혼자만의 성장으로 끝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인 비즈니스의 성장을 가로막은 한인끼리의 과당 경쟁 및 제살깎기. 동업으로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작더라도 독식해야 직성이 풀리는 비즈니스 스타일은 여전하다. 서로 믿지 못하는 풍조가 조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최저임금 지불 문제나 환경 문제에 대한 무관심 등은 그동안 정부당국의 강력한 단속을 초래하기도 했다.

어느 사회나, 어느 인종이나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도식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지만 한인 비즈니스의 어려움을 무조건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인 비즈니스가 뉴욕에 뿌리를 내린 것은 분명하다. 다만 바람탓보다는 성장을 가로막는 부분부터 과감히 버리는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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