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진정한 부자는?

2004-04-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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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편집국 부국장)

퀸즈 지역에 사는 한인들이라면 누구나 롱아일랜드에 있는 조립가구회사 이케아(IKEA) 매장을 가보았을 것이다. 갓 이민 왔거나 신혼부부들이 즐겨 찾는 이케아는 스웨덴 본사의 자회사로 현재 연간매출 122억 달러의 세계 최대가구업체로서 디자인이 심플하고도 고급스러운데다 가격까지 저렴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최근 이 이케아의 창립자인 잉그바르 캄프라드(78)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로 부상했다고 유럽 언론들은 보도했다.


스웨덴의 경제 주간지 베칸스 아페레르 최신호는 그의 재산이 530억달러로 게이츠의 재산 47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그런데 이 할아버지, 엄청난 구두쇠라고 한다.미국 잡지 포천은 막대한 재산에도 불구, 그는 10년 된 낡은 볼보를 손수 운전하고 냅킨을 메모지로 재활용하고 값이 싼 야시장에서 식품을 사며 비행기를 탈 때도 이코노미석을 애용한다고 한다. 호텔 객실의 미니바에 있는 콜라 가격이 워낙 비싸지만 갈증을 이기지 못해 이를 마신 후 인근 가게에 가서 같은 콜라를 사다가 채운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

한국에도 이 못지 않은 구두쇠가 있었다.충북 충주에 살았던 고비란 사람은 조선조 중엽의 실제인물이라고 한다. 선조의 제삿날마다 ‘지방’을 다시 쓰는 종이가 아까워서 한번 썼던 것은 기름에 절여서 두고 두고 다시 썼다 하여 ‘절인 고비’로 불렸는데 이 말이 변해서 ‘자린고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이 자린고비가 장에 갔다가 큰맘 먹고 굴비를 한 마리 사왔는데 반찬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매달아 놓은 굴비 한번 쳐다보고 하는 것이다.

겸상으로 아들과 밥을 먹는데 아들이 두 번 쳐다보니 아들에게 밤에 자다가 물 켜려고 두 번 씩이나 쳐다보느냐고 나무랐다 한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근검절약하여 검소한 삶을 사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인색하고 구차한 삶을 산다 하겠다.

사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돈은 안쓰면 모인다. 하지만 우리들은 늘 돈 쓸 때가 너무 많아 항상 돈이 부족하다. 그런데 주위에서 보면 있는 부자가 더욱 돈을 안 쓰며 없는 사람이 오히려 있는 사람보다 돈을 더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친구와 식사를 하러 가서 계산대에 선 사람은 수중에 겨우 백 달러 뿐인 주급장이이다. ‘요즘 비즈니스가 어려우니까 일만 하면 따박 따박 돈이 나오는 내 형편이 더 났지’하고 수만 달러 캐시를 집에 묻어두고 있는 자영업자 친구의 밥값을 낸다.

그런가 하면 내가 아는 한 여성은 아직도 20년전 한국에서 갖고 온 외출복을 그냥 입고 종이 내프킨을 반 잘라서 사용하며 한번 쓴 랩은 씻어서 말려 재활용하면서 매달 한국의 불우아동을 돕고 있다. 그 여성은 십년 전 내게 ‘아이 생일 때는 케익 하나만 사주고 선물비나 용돈은 모조리 학자금으로 저축할 것’을 강하게 권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 삭막해 보이고 아이도 섭섭해 할 것같아 파티도 열어주고 선물도 사주었는데 이제는 이 충고를 따라야 할 것같다. 내 딴에는 절약한다고 생각하나 실은 엄청난 낭비를 하고 있다.

제대로 된 부자는 아낄 수 있는 한 아껴 돈을 모으지만 꼭 필요한 곳에는 큰돈을 성큼 내놓는다. 남몰래 불우이웃을 돕고 있거나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장학기금 수여 등의 선행을 하고 있다면 그는 보통의 ‘쫀쫀한 부자’가 아닌 진정한 ‘큰 부자’인 것이다.

우리가 익히 듣는 이름인 카네기, 록펠러 등은 미국 곳곳의 대학, 자선사업, 의학연구소, 문화재단 등에 그들의 족적이 남아있다. 이케아가 장학사업을 비롯 사회환원을 하던가? 생색만 내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규모이던가? 자린고비는 모아둔 돈을 그대로 썩히고 말았던가? 가뭄이 든 동네사람을 위해 광을 열었다는 뒷얘기가 있던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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