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따로, 또 같이’의 지혜를...

2004-04-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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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특집부 차장대우)

얼마 전 한 한인단체의 총회에 참석했다. 모임의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장소를 제공해 준 기관의 관계자가 총회 종료 직전 불려나와 소속기관이 펼치는 각종 활동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후 한 참석자가 “한인사회에는 그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 기관이 상당한 신임을 얻고 있는데 두 기관이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그 관계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상은 동일하지만 우리가 더 제대로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관계자는 비교대상이 된 모 기관이 한인사회에서 십 수년간 독보적으로 펼쳐오면서 많은 한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안겨준 것으로 평가받는 우수 프로그램을 실례로 들어 “오래도록 해왔다고는 하지만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해 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폄하했다. 그는 또 “우리 기관도 조만간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본격적으로 그 활동을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어느 정도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자의 대답은 상당히 귀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공개 석상에서, 그것도 한인사회에서 칭송 받는 타 유사기관을 그토록 폄하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은 그 관계자의 자질을 오히려 의심스럽게 했다.

물론 한인사회에는 동일한 대상에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들이 많고 그렇다보니 서로 겹치는 프로그램도 많아 은연중 서로 경쟁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또 유사한 프로그램이라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기관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그나마 생존의 문제가 걸린 한인 동종업소간의 모임이나 협회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고자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다. 하지만 `비영리’라는 이름을 앞세운 서비스 기관들은 뭔가 특이한 것이 있으면 금새 유사단체의 프로그램을 모방하면서도 서로 자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또 모임이 있을 때마다 지겹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타 유사단체를 깎아 내리기 바쁜 모습들이다.

물론 서비스 대상이 동일한 곳을 한데 묶어 하나로 통합할 필요는 없다. 단지, 한인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이왕이면 서로 하나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서로 일손도 분담할 줄 아는 `따로, 또 같이’의 지혜와 참된 봉사의 정신을 보다 많이 엿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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