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기왕이면 다홍치마

2004-04-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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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한국 속담 중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빚을 진 두 사람중 한 사람은 빚을 빨리 못 갚은 데 대해 ‘미안하다’며 좋은 말을 해서 빚을 탕감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한 편은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면서 나쁜 말을 하는 바람에 끝내 빚을 갚아야 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말이란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상 외의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 번 한국의 총선 때에도 열린 우리당의 정동영 선대위원장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는가를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투표 당일 노인들은 집에 있어도 괜찮다’고 한 정 위원장의 말 한마디는 노인유권자들의 마음을 크게 건드렸다. 이는 좋은 말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한나라당 박근혜 선대위원장 쪽으로 마음을 돌리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놀란 정동영 위원장이 뒤늦게서야 선대위원장, 비례대표직을 사퇴하고 나왔지만 이미 노인들의 분노는 걷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열린우리당은 정 위원장의 사퇴로 어느 정도 고비는 넘겼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 여파는 크게 작용했다. 이와 반대로 박근혜씨는 시종일관 부드러운 말로 ‘다같이 화합하자’며 유권자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는 자세였다. 정 위원장의 말에 화가 난 노인유권자들이 박근혜 위원장의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서 상한 마음과 분을 푸는 분위기였다. 삼보일배로 다리가 부
르트도록 엎드려 절하면서 사과한 민주당의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상대적으로 낙선했다.

그는 잘못했다는 말은 했지만 툭하면 상대당과 상대후보를 비방하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또 탄핵소추를 당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걸핏하면 ‘못해먹겠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기자회견석상에서도 안 해야 할 말을 해 관계된 대우 건설 사장이 자살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긍정적인 말보다는 신세타령의 말만 하니 국민들은 저런 사람 믿고 어떻게 해나가겠는가 우려했다. 성경에도 보면 ‘온유한 말은 은 쟁반에 담아놓은 금실 같고 화가 난 말은 살을 도려내는 칼과 같다’고 했다. 사람의 입에서 내뱉는 말이 얼마큼 무서운 것인가를 실감나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말에 ‘혀끝을 조심하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혀를 자칫 잘못 놀릴 경우 패가망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녀 사이, 이웃간에나 직장 동료,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 주인과 종업원 사이, 교계 내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원인도 알고 보면 간단한 말 실수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잘못 내뱉는 말 한마디 때문에 얼마나 문제가 많
이 생기고 사업에도 실패하는 일이 생기는가.

서로간에 말다툼이 났을 때도 상대방을 건드리는 말 한마디는 진짜 ‘너는 너‘ ‘나는 나’ 하고 갈라서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경우를 야기시킨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 한마디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상한 감정을 누룩같이 부풀려 폭행, 살해, 가출, 이혼으로까지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간에, 또는 부부간에 직장에서도 임원과 직원간에 문제가 생기면 ‘너무 걱정 마라’ 하는 말로 상대를 위로하고 격려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왜 그랬어?’ 아니면 ‘큰일났네’ ‘잘못했다’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희망은 물 건너 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말로 할 것을 강조하는 조언이나 충고가 많다. 말을 가려서 쓸 줄 아는 사람이 생각과 행동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남이 나에게 잘 하면 다정히 말하고 좀 잘못한다 싶으면 함부로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말과 태도를 익힌다면 나는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사람, 결국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격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유난히 곱지 못한 말을 써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무심코 뱉은 가시돋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생에게 부모나 선생님의 ‘너는 잘한다’ ‘너도 할 수 있다’는 격려의 말 한마디는 용기를 주고 꿈을 심어줄 수가 있다. 그러나 잘못된 말 한마디는 그 아이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좋은 말은 천 길의 눈을 녹이는 보약중의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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