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대에 따른 종교 변화

2004-04-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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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섭(롱아일랜드)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진정으로 성경책을 집중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었다. 때문에 성경적인 지식을 요하는 부분에서는 선뜻 자신감을 갖지 못해 자신있게 말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인지 40년만에 좋은 기회가 되어 전부 다 읽을 기회를 가졌다.

과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성경을 읽어본 사람마다 각자 다른 견해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순간 믿음을 깊이 가진 사람과 더 많은 성경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비웃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약!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온 과정을 하나님이라는 절대 권력을 첨가하여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기록일 것이다.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어떤 지파와 국가가 흥할 때는 하나님의 말을 순종하고 잘 믿었기 때문에 잘 되었고, 망할 때는 하나님의 말을 거역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하는 기록들인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왕조들이 세워졌다가 망하고 하는 것들을 우리는 보아왔다. 왕조들이 흥하고 망할 때마다 군주, 신하, 백성 할 것 없이 천지신명을 수없이 찾았다. 천지신명이 무엇인가, 이것이 소위 말하는 하나님이 아닌가.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 어느 곳에 우리가 존재하는 곳 어디에나 똑같이 공평하게 존재하고 계신 것이다.

창세기 49장 10절에서 말하는 것에 의하면 이미 예수 재림을 예언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인가. 구약을 굳세게 믿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예수를 실토하는 것을 거부하며 오직 다윗왕을 가리키며 또한 다윗왕과 같이 이스라엘을 막강한 세력을 가진 나라로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것을 믿고 있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를, 다윗을 조상으로 두어 혈통을 이어온 것 뿐이지 구약과 신약이 꼭 이어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우리는 구약에서 말하는 안식일을 틀림없이 지키고 있지 않다. 누가 어떻게 이것을 합리적으로 말하여 정당화하려고 말할지라도 인정해야 될 것이다.

신약에서 나오는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떠나 많은 초대교회를 세웠으며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예수의 존재를 더 부각시켜 전도하여 더 믿게 되었다. 예수가 부활한 일요일 아침에 우리가 주일이라고 하여 이 날을 켜왔으며 이 날을 더욱 더 강조하기 위해 콘스탄틴 황제가 절대권력으로 제정하여 이제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십일조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다. 성경에서 보면 제사장들이 윤택하고 여유가 있을 때가 있었다. 이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헌납했을 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했다. 그리고 어떤 매스컴에서 본 것인데 주보에 십일조를 낸 사람들의 이름을 올리면, 안 올렸을 때 보다 더 많은 헌금을 거두어 들였다고 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복을 더 주는 것이 아니고 덜 준다고 한다. 신약에서도 연보는 자기가 편안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하는 것이지 어떤 상황에 집착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 눈에 보이는 많은 목사들이 너무 윤택하고 여유있는 모습들이 현저하게 눈에 띄고 있다.


흔히 말하듯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종교의 상을 넘어선 초유의 힘을 가진 유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를 직업으로 택하여 삶을 살아가는 것 보다는 무언가를 초월하여 이상을 추구하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신문지상에서 보면 종교칼럼이 아닌 부분에서도 목사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는 것 같다.

예수는 흑백 논리가 난무하는 정치성이 있는 근처에도 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종교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기독교 내에서도 동성결혼을 허가하는 많은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렇듯이 모든 것이 변한다. 구약에서는 숨막히게 하는 율법을 중시하였지만 신약에서 복음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이끌고 있다.

좀 더 신약을 무장하여 진짜 예수를 믿고 따를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며 예수의 고난이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구약을 믿는 사람들의 편견과 오만을 꺾어야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그들을 회개시킬 수 있는 능력있는 초강력의 기독교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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