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아름다운 남자들

2004-04-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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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편집위원>

차인홍!
그는 휠체어 장애인으로서 처음으로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 주립대 오케스트라 지휘자 겸 바이얼린 음악 교수가 됐을 때, 또 앞서 그가 참여해 온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을 통해 꽤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몇 년 전 뉴욕에서 그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뉴욕밀알선교단의 최병인 단장의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났다. 첫인상은 매우 밝았고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털어놓은 장애와 가난을 딛고 일어선 인생역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생후 1년 여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발을 쓸 수 없었던 그는 대전의 구멍가게 집 3남3녀의 막내로 때어나 9살 때 가정형편상 재활학교에 맡겨져 외로움과 극심한 배고픔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바이얼린 무료 레슨의 음악을 만나게 됨으로써 인생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혼자 연습을 하고 어머니를 졸라 어렵게 마련한 5,000원 짜리 바이얼린으로 1년만에 충남도 콩쿠르에서 1등 상을 따냈다. 재활원의 혹독한 군대식 규율생활 속에서 강냉이죽으로 고픈 배를 달래가며 얻어낸 첫 성취였다. 모처럼 찾아온 희망의 빛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재활원에서 받은 교육은 초등과정이 전부였고 장애인을 받아주는 중학교가 없어 일본의 장애인 기술학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1년간 호된 고생과 차별 속에서 기술을 배우길 원했지만 단순노동만 하다가 귀국하게 되고 그 후 현실과 미래는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또 한번 삶의 전기가 주어졌다. 바이얼린을 처음 가르쳤던 선생님의 대학제자가 찾아와 재활원의 신체장애인 4명으로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을 창단한 것. 그로 인해 다시 삶의 목표를 얻어낸 그는 합숙소에서 마련해준 작은 집에서 넷이 자취를 해가며 하루 10시간씩 연습을 했다. 연습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찬바람이 몰아치는 연탕 광에서 싸구려 바이얼린을 붙잡고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값비싼 연주를 해냈다.

각종 공연을 통해 ‘휠체어에 앉은 천사들’의 존재를 알린 ‘베데스다 4중주단’은 서울 정립회관으로 옮겨왔고 그 곳에서 쟁쟁한 연주가들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그 후 아산재단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대학의 후원으로 동 대학에서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인 라쌀로부터 사사 받는 행운까지 갖게 됐다.

곧이어 차씨는 뉴욕시립대학교의 브루클린 음악대학 석사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등을 거쳐 200년에는 오하이오주 라이트 주립대학의 바이얼린 교수 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임명됐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그는 자전적 스토리를 펴냈고 출판사는 ‘아름다운 남자, 아름다운 성공’이라고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이 제목이 붙은 이유는 차인홍씨를 만나보면 ‘아름답다’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란다. 외모가 그렇고, 마음 됨됨이가 그렇고 무엇보다 그가 살아온 삶이 그렇다고 한다.


장애를 넘어 아름다운 선율로 감동을 전해주는 ‘휠체어의 천사들’이 뉴욕에서 공연을 갖는다. ‘은총의 샘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이 바로 그들이다. 4명의 장애인으로 구성된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의 멤버는 제1 바이얼린 차인홍(라이트 주립대 음악과 교수), 제2 바이얼린 이강일(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단원), 비올라 신종호(구리시 교향악단 음악감독), 첼로 이종현(대전시립교향악단)이다. 이들은 이종현씨를 빼면 모두 휠체어를 타야 하는 중증장애인들이다.

특히, 베데스다 4중주단의 멤버 모두는 차인홍씨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역경을 헤쳐나가며 따뜻하고 풍성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남자들이다. 이들 역시 외모가 그렇고, 마음 됨됨이가 그렇고 무엇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오는 18일 롱아일랜드 아름다운교회에서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의 장애인의 달 특별공연이 열린다. 그 곳에 여러분을 초청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한인사회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더욱 살 맛 나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chye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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