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어와 ‘그리스도의 고난’

2004-04-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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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수(한미문화협회 회장)

이번에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Jesus Christ) 영화를 보게 되었다.가기 전에 상반되는 영화 평을 많이 들은데다 어느 목사님의 ‘눈물 흘릴 수 없었던 영화’ ‘고문 영화에 실망’이란 글을 읽어 나의 흥미는 남달랐다.

부흥회에서 보다 더한 은혜를 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은혜롭지 않은데 은혜받은양 해야 하느냐? 등등 상상하니 고민스럽기도 했다.가서 보니 대사가 영어가 아니고 영어로 자막처리가 되어 있었다.


직업병이 발동되어 영어자막을 열심히 보았다. 소위 영어권, 특히 영어권의 신학도나 영어권 사역자에게는 너무도 평범하고 평이한 대사들이었지만 그 많은 교회 단체관람객의 몇 %가 그 자막을 이해하고 그 대사에서 감명 또는 은혜를 받았을까 의아스럽게 여겨졌다.

화면만 보고 그리도 은혜를 받았다면 이 영화 제작자나 주연은 실로 성령 충만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예수의 분신쯤 될 법 하겠다.영화의 장면은 시종일관-물론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의 고난에만 초점 맞추었기에 고난을 강조할 수는 있다. 과장된 즉 그리도 혹하게 맞으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까지 고문의 과장은 큰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많은 신도들이 ‘저 믿음 없는 자’ 소리를 들을 줄 알면서도 자신이 은혜받지 못하고도 신도들간에 찍힐까 두려워 덩달아 은혜스럽다고 외치는 신도들에게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본대로 자기가 느낀대로, 또 자기의 믿음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고언을 한다.

종려주일인 고난주간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예수 고난에 동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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