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국제화와 국제결혼 시대

2004-04-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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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지난주 한국의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이 2만5,000여명으로 새로 결혼한 100쌍 중 8쌍이 국제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국제결혼은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작년에는 재작년에 비해 61%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결혼상대자의 국적은 중국, 베트남, 일본, 미국 등이 많지만 러시아, 동남아 등 세계 곳곳으로 다양하다. 이런 증가추세로 본다면 앞으로 한국에서 국제결혼은 더욱 보편화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결혼하는 사람 10명 중에 거의 한명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한국사람들은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외국 물건을 진귀한 것으로 여겼고 외국을 다녀온 사람만 만나도 희귀한 기회로 알았다. 그러니 국제결혼이란 특이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지 보통사람은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이런 특이성 때문에 일반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급속한 세계화 추세 속에서 한국인들의 생활환경과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세계화는 물적교류와 함께 인적교류를 확대시켰다. 한국사람들이 유학, 상용, 이민 등으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 되었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한국에 들어와서 살게 되면서 한국인과 외국인의 교제 기회가 많아졌다. 또 한국인들의 비즈니스와 유학 등의 범위가 국
제적으로 확대된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 상대도 외국인까지 확대되었다. 이래서 국제결혼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에 국제결혼도 문화적 산물에 불과할 뿐이다. 과거에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과 교류가 없는 고립생활을 했을 때는 국제결혼을 할래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 국제결혼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예를 들어 전쟁포로로 잡히거나 노예로 팔려가는 등 비정상적인 경우였기 때문에 무척 이례적이었고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결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시대인 이 시대에는 모든 문화가 국제화의 산물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먹는 음식을 보면 나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한국음식을 즐겨 먹지만 때로는 한국음식도 아니고 미국음식도 아닌 이른바 퓨전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은 한식 보다도 미국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음식문화만 이처럼 국제화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 동양과 서양의 큰 교류가 있을 때마다 동서 문화가 서로 영향을 끼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헬레니즘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 한인들이 미국에 이민을 와서 살다가 부딪히는 한 가지 문제가 자녀들의 결혼문제인 것 같다. 자녀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었는데 마땅한 배우자감을 찾지 못해서 고민하는 부모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배우자도 언어와 관습, 사고방식이 같은 한인을 원하는데 외국인들과 교제하여 어느덧 외국인처럼 되어버린 자녀들은 국제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결혼문제로 인한 부모자식간의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결혼이란 자라온 환경과 가정환경, 사회적 능력 등 조건이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인종이 다른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한 번은 신랑이 아이리쉬이고 신부가 주이시인 한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가톨릭 신부와 유대교 라바이가 함께 결혼식을 주례하는 것을 보고 다른 민족간의 결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살면서 자녀를 한국인과 결혼시키겠다고 고집한다면 한국에 살면서 외국인과 결혼시키겠다고 고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만약 자녀를 꼭 한국인과 결혼시키겠다고 한다면 애당초 이민을 온 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도 10명 중 1명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고 앞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자녀들의 국제결혼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과민이 될 필요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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