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쟁과 화해

2004-04-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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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순(예수원교회 목사)

작금의 지구촌은 온통 테러전쟁과 자살폭탄, 민족간 혈투와 정파분쟁으로 한시도 평안치 못한 불안과 공포 속에 사는 것이 현대의 인간세상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의 조국 한반도와 한민족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불안정한 상황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념분쟁으로 남,북의 분계선으로 장벽을 치고 적대시하며 군사와 정치적 대치로 맞대결만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남북의 대결 상태에서 남한은 정당정치 대결로 대통련 탄핵 찬반 논쟁, 지역갈등, 보수 혁신 갈등, 신구세대의 나이 차별화 등.


이 나이 차별화는 한국에만 유독 강조되고 있다. 사오정-45세 정년 은퇴, 오륙도-5,60대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놈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총선을 치룰 선거철에 가장 뜬다고 하는 여당 대표가 국민의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할 60,70대 노년층들은 선거 안해도 된다느니, 집에 있으라느니 했다. 이런 사람이 무슨 국가운영에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늦게서야 사과한다면서 경로당을 찾는 일들. 그러잖아도 퇴직하고 거리에서 무렴한 하루 하루를 지나는 어르신들에게 도대체 인간으로서 할 말인가. 왜 한국엔 그 말 잘하는 논어 강의하는 모 교수나 인권을 말하는 운동권들은 이런 때에 말이 없는가.

공산주의자들이 노약자나 병약자들은 실용 가치가 없다고 인간쓰레기로 처분하는 일들이 있지 않았던가. 정신분석학자며 무신론자였던 지그먼 후로이드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는 말 보다 무의식중에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심중에 깊이 잠재한 것이 나온다고 했다. 이번 정씨가 한 말은 생각 없이 한 것,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언중유골이다.

오늘의 노년들은 우리의 뿌리다. 그들은 일제시대부터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국토 방위하면서 오늘의 경제를 일군 분들이 아닌가. 지금 이태백의 20대가 아니다. 386의 운동권이나 신세대들도 아니다.

어제까지 뼈빠지게 조국이 살 만큼 일궈놓고 일선 일을 차세대에 물려주고 몸과 마음이라도 쉬려는 순간 국민의 의무인 선거권을 무시하려는 언중유골의 무책임한 발언은 지난날의 선배들을 모독하는 몰상식한 패거리꾼들의 모습이 아닌가.

이런 부류에다 나라를 맡길 수 있을까. 인기 전술로 정권만 잡으면 또 오늘은 이 말, 내일은 저 말, 수준 이하의 말장난 안 한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까. 정치는 몇 사람의 인기 쇼무대나 기술이 아니다. 국가 생존권과 국민 총화를 이루는 종합예술이라 했다.

오케스트라와 같은 예술이다. 화음을 일으켜야 한다. 지금은 선진국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성차별이나 나이 차별은 없다. 이런 것은 인권문제가 된다. 이념적 지방색 보수 진보로 분열 시키더니 이젠 나이로 차별화시키는 것은 국민을 분열시키는 일로 민족통일에 역행하는 결과만 된다.


4,5년 전의 정권 쟁탈을 위해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에 오점을 남기고 또 다시 민족에 비극과 불운을 가져오게 해서는 안될 것이니 분열적인 말이나 일들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겠다.

찬반 집회, 촛불모임, 감정적인 인터넷 공방 신문 방송 여론조사가 분쟁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하지만 그 자유가 국민화합에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나라와 민족의 화합에 방해되는 것은 모두 자제해야 한다. 말로만 하나라고 부르짖으면서 의분열공작에 열을 올리나 무슨 의도가 있는가. 민족 분열은 어떤 명분도 세우지 말자. 오직 조국 통일과 국가발전을 위해 하나로 응집되는 화합하는 일에 전민족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하나님도 인간과의 분열된 관계를 예수님이 오시어 화해를 위해 십자가에 대속자로 화목제물이 되지 않았던가. 한민족은 지금 희생하는 화목제불이 필요하다.

대통령부터 전국민에 이르기까지 분열을 제거하는 십자가를 지고 소모적인 분쟁에서 건설적인 화해에 총력을 기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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