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타까운 고국의 현실

2004-04-07 (수)
크게 작게
서석준(전 언론인)

운동권의 인권변호사로 정치생명을 이어온 사람이 젊은이들의 인터넷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을 때 혹시 선동정치, 코드 정치로 나라를 이끌지는 않을까 우려하던 기우가 현실로 나타나 필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탄핵에 앞서 노대통령이 한 기자회견은 한 마디로 운동권의 고도로 계산된 전략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운동권의 선동은 민생이나, 국가 안위나 상생 보다는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파괴하고 모든 것을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 밖에 모르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자회견은 한 마디로 아집과 독선의 표본이었다.


측근비리 인물에 대해 법에 의해 밝히면 될 것을 대통령 스스로 하나같이 변명을 하고, 선관위의 위헌 결정은 법이 잘못되어 수용할 수 없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여론이고, 자신에 불리한 여론은 부패 수구세력이고, 자신의 동치에 어긋나면 정치가 온통 혼란에 빠졌고 그 책임은 야당에 있다는 참으로 놀라운 사고방식이다.

국태민안(國泰民安) 보다는 자신의 아집과 자존심에 상처받는 것을 더 싫어하는 대통령이 고국의 앞날을 어떻게 통치해 갈 것인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그런데 이번에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이러한 대통령의 통치에 힘이 될 여당이라는 ‘열린우리당’의 대표되는 사람이 “60대 70대는 투표 할 필요도 없고 물러나 조용히 집에 있어라. 이제 우리는 광화문의 촛불시위대의 20대 30대와 이 나라를 걱정하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는 헌법정신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의 발언이다. 한국 헌법 24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로 되어 있고, 또 제 11조에는 “모든 국민은법 앞에 평등하다”고 되어 있다.

세대간에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외면하고 젊은이들만으로 미래를 설계한다면 윗사람의 가르침은 없고 아랫사람끼리 가르치고 배우는 전대미문의 교육이 탄생하게 된다. 지난 1년 동안 이 정부는 ‘개혁’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20, 30대는 진보적 개혁 주도자이고 50,60대는 부패 수구세력으로 몰아부치는 것 외에는 기억이 없다.정부의 진보적 성향 자체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수를 베제한 진보는 급진의 자기 실패의 위험성이 많고 깊은 함정에 빠지면 배타성과 독선의 독이 되기 때문이다. 즉 너희는
부패하고 우리는 깨끗하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10분의 1이라는 청빈 측정기가 나온 것이다.

정동영 당의장이 아무리 사죄하고 다녀도 무의식중에 그들의 속내와 됨됨이가 들통 났고 능력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대통령이나 그를 추종하는 열린우리당 당의장이나 경박한 말투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진보, 보수를 갈라놓고 세대간을 갈라놓는 것이 개혁이고 새 정치인지 묻고 싶다.


여중생의 희생을 자신들의 정치 실리에 이용하므로 한미 관계를 소원하게 하더니 탄핵반대 시위 촛불로 세대간을 갈라놓는 열린우리당과 현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당이며,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 무엇을 설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세대간을 갈라놓는 것은 인간의 천륜을 어기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 이러한 대통령과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다.

옛말에 ‘하늘이 준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부디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제 운동권의 선동자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지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