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간 큰 어떤 엄마!

2004-04-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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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특집부 차장대우)

얼마 전 플러싱 한인타운의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믿기 힘든 상황을 목격하게 됐다. 아주 어린 한인 남자아이 하나가 운전석 문을 열어놓은 채 차안에서 “엄마”를 부르며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해는 저물어 주위는 깜깜한데 주변을 둘러봐도 엄마처럼 보이는 여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걱정스런 마음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다가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물었더니 아이는 잠시 경계하는 듯 하다가는 이내 “엄마가 보고 싶다”며 또 다시 목놓아 울었다. 사연인즉, 엄마가 금방 돌아 올 테니 차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도통 소식이 없다는 것.


그다지 붐비는 장소도 아니었고 또 차가 큰 길 방향으로 주차돼 있어 `행여 지나가던 경찰 눈에 띄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를 진정 시켜보려 했다. 하지만 아이는 더 서럽게 울었고 급기야 아이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엄마를 찾아보기로 했다.

낯선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금새 따라 나서는 아이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자칫 유괴범으로 몰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아이를 이대로 방치해 둔 `엄마’라는 인물이 더 궁금해졌다.

아이와 함께 넓은 가게 매장의 진열대 사이사이를 뒤져 드디어 발견한 엄마는 매장내 위치한 약국 앞에서 주문한 처방약을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자기 아이를 데려 왔는데도 엄마는 “차에서 기다리라니까 왜 나왔어? 울기는 또 왜 울고?”라며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아이를 나무랐다. 생각 같아서는 그 엄마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마 경찰이 먼저 댁의 아들을 발견했다면 아이를 뺏기실 뻔했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하고 물러났다.

늦은 시간 무방비 상태로 방치됐던 아이가 그나마 안전했기에 다행이지만 위험천만한 일을 벌여 놓고도 너무나 태연한 아이 엄마의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치밀게 했다.

미국에서는 잠시 잠깐일지라도 어린아이들만 그냥 차에 두고 현장을 떠날 경우 부모들은 처벌을 면하기 힘들다는 것을 몰랐을까?

정말로 이처럼 간 큰 부모가 있었다니… 믿어지지도,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이처럼 간 큰 한인부모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섰지만 씁쓸한 생각이 들어 그날 따라 발걸음은 왠지 더욱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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