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여인천하

2004-03-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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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한국에서 요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분야가 그러하지만 특히 정계나 법조계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을 제치고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남성들의 힘에 눌려 이리 저리 치이던 여성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사회 각 분야의 요직에 두각을 나타내더니 이제는 남성들의 텃밭이던 정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법조계나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간판으로 등장, 여성 특유의 개성을 과시하고 있다.장관에 기용되는 것은 이제 보통이 되었고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부터는 법무장관에 강금실씨가 올라, 검찰개혁을 위한 선두에 나서고 있다. 또 오는 총선을 앞두고 전여옥, 이승희, 박영선씨 등 3당 여성대변인이 당의 새로운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유권자들의 표심 잡기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민주당의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당의 최일선에 서서 남성 정치인들을 이끌고 있다. 역사상 여성 지도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예는 박순천 민중당 대표를 필두로 교육계와 문화계 여성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과 시인 모윤숙씨 등은 친일인사로 분류돼 재평가 대상이 되고 있다. 어쨌거나 지금 한국은 역사적으로 전례 없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남존여비, 가부장제 같은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고정관념이 뿌리깊게 박혀있던 한국의 사회구조와 배경 속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확실히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이다.

이제는 ‘아녀자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 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통하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이다. 명분만 뚜렷하면 오히려 여성이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 가정과 직장, 사회,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놀라운 시대적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여자가...’ ‘여자는 몰라도 돼’하
며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이리 저리 여성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팽배, 모든 주요자리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속속 여성들이 자기 자리를 굳히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앞으로 한국의 발전도 머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벌써부터 항간에서는 차기 대선 주자로 박근혜, 추미애, 강금실씨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제는 여성도 얼마든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한국이 변해도 보통 변한 것이 아니다.

물론, 남녀 평등의식이 일찍 정착된 미국 경우 여성들의 정치 활동은 남성들 못지 않게 눈부시다. 전 국무장관 매들린 울브라이트, 콘돌리자 라이스 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 상원의원인 힐러리 클린턴과 엘리자베스 도울, 민권운동가 도로시 하잇의 활동을 들 수 있다. 미국 외에 영국과 인도에서는 마가렛 대처와 인디라 간디가 수상에 올라 지도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올린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이는 남성들이 갖지 못하는 여성 특유의 인내, 강인함, 온유함, 그리고 섬세함을 살려 노력해서 쟁취한 결과이다. 이곳 한인사회에도 이제는 여성들의 능력이 곳곳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얼마전까지 여성들이 감히 생각도 못한 은행계에 이제는 지점장들이 거의 모두 여성으로 대치됐다. 이러한 추세는 국내외를 비롯 한인사회에도 앞으로 더 많은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인가정에서도 요즘 집안의 경제권은 거의 모두 여성들이 쥐고 있다고들 한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남편들이 술과 도박, 마약이나 골프, 여자 문제로 한눈을 팔고 있는 동안 가게를 지키기 위해 운영을 도맡다 보니 생긴 결과라고 한다. 이처럼 가정이건, 사회건 여성들이 직접 나서는 바람에 남성의 위치는 갈수록 밀려나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로 남성들이 민생을 돌아보긴 커녕, 매일 싸움만 일삼으니 식상해진 민심을 바로 잡고자 여성들이 민심 추스리기에 앞장선 것이다.

올해는 남성들의 패션조차 꽃무늬가 있는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유행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아마도 앞으로는 각 나라와 지구촌을 여성들이 주무르고 남편들은 집에 들어앉아 아기를 키우고 설거지를 하며 아내의 사회 생활을 돕는 그런 역현상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남성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여장부 천하시대가 소리 없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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